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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디지털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디지털 실감기술과
아이돌 산업의 결합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 고도화된 디지털 실감(공간구현) 기술, 새로운 경험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경향, 그리고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확대에 따라, 아이돌 산업도 가상세계를 적극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새로운 아이돌이 기존 아이돌과 달리 현실 및 가상세계와 어떻게 관련 맺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적 가능성과 우려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 1들어가며
    디지털 실감(공간구현) 기술이 아이돌 산업과 만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제 아이돌의 활동무대는 현실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가상세계에 아바타(avatar)를 두고 현실과 가상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홀로그램(hologram) 영상을 통해 공연장에서 아바타와 함께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애초에 가상에만 존재하는 아이돌도 있다.

    주로 아이돌 산업에서 기술을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아이돌 산업으로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게임 기획·개발을 통해 실감기술 역량을 키워온 게임업계가 연예기획사의 콘텐츠 지식재산(이하 ‘IP’)을 활용한 사업영역 발굴에 적극 나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바타 서비스 회사가 연예기획사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실제 아이돌의 아바타 콘텐츠화를 시도하는 모습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공통점은 (그것이 현실 속 아이돌과 존재론적 관계를 맺든 그렇지 않든) 가상세계에 아이돌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그렇게 가상세계 속 아이돌이 늘고 있고, 영향력을 확산해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새로운 아이돌이 기존 아이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는지 정리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적 가능성과 우려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 2아이돌이 가상/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
    가상 아이돌의 등장이 최근 일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최초의 사이버가수 ‘아담’에서 부터, 2001년 5명의 실제 멤버와 1명의 사이버 멤버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나스카’를 경유해, 2012년 보컬로이드(vocaloid) 캐릭터가수 ‘시유’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도가 있어 왔다.

    그림1 기존의 가상 아이돌: 아담(왼쪽), 시유(오른쪽)

    2018년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캐릭터들(아리, 아칼리, 카이사, 이블린 + 세라핀)로 결성된 아이돌그룹 ‘K/DA’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아티스트들(각각 (여자)아이들 미연·소연, 자이라 번스·울프타일라, 매디슨 비어·비 밀러 + 렉시 리우)이 개별 캐릭터에 대응해 노래를 부르고 동작을 입혔다는 점에서 K/DA는, 오롯이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아담이나 시유와는 구분된다.

    그리고 2020년 11월 데뷔한 ‘에스파(aespa)’의 경우, 멤버들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현실과 가상에서 동시에 활동한다.

    그림2 최근의 가상+현실 아이돌: K/DA(왼쪽), 에스파(가운데), 이터니티(오른쪽)

    2021년 3월 첫 뮤직비디오를 선보인 ‘이터니티(Eternity)’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그래픽 전문기업이 직접 촬영한 영상과 실사형 가상인물 이미지를 합성해 만든 가상 프로젝트 아이돌그룹이다. 이렇듯 아이돌이 가상/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현실 아이돌(대부분의 아이돌), 가상 아이돌(아담, 시유 등), 가상+현실 아이돌(K/DA, 에스파, 이터니티 등).
  • 3가상 아이돌과 가상+현실 아이돌 위치짓기
    ‘가상 아이돌’과 ‘가상+현실 아이돌’은 기술로 신체를 재현하려는 오랜 시도의 산물이다. 디지털 정보와 데이터가 현실의 신체를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에 침투해 새로운 신체를 만들고 가상세계에 살게 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현실 아이돌과의 관계 속에서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을까? ① 아담, 시유 등의 ‘가상 아이돌’은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활동하는 아이돌과 달리,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성된 신체만 있고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강신규, 2020). 현실에 실존하는 인물들의 아바타가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존재이기는 하나, 현실 속 인물들에 대한 고려 하에 재현됐 다는 특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아담은 탤런트 겸 배우 원빈의 닮은꼴로 유명했다. 즉, 현실의 인물과 가상의 아이돌 간 명징한 존재론적 관계는 없지만, 가상의 아이돌을 현실의 인물들을 경유해 재현한 이상적인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상의 공간에 마련된 로봇인 셈이다. 신체가 기계로 현 실세계에 존재하는 대신, 가상세계에서 디지털 정보와 데이터의 집합체로서 보여질 뿐이다.

    ② K/DA, 에스파, 이터니티 등의 ‘가상+현실 아이돌’은 현실 너머에만 존재하는 가상 아이돌과 달리, 가상을 현실과의 연계 속에 두거나(K/DA) 현실 위에 덧씌움(에스파, 이터니티)으로써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지우거나 희미하게 만든다. 둘 사이에는 가상과 현실 모두에 연결된다는 공통점뿐 아니라, 근본적인 차이점도 있다.

    ②-① K/DA는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를 통해 알려진 캐릭터들에 실제 아이돌과 가수들을 접합한 시도이다. 엄연히 둘(캐릭터 vs. 실제 아이돌/가수)은 다른 존재이고, ‘K/DA’라는 프로젝트 하에서만 상호연결될 뿐이다. 팬들 역시 이미 세계관과 인지도를 동시에 지니는 <리그 오브 레전드> 캐릭터 팬, 직접 노래를 부른 아이돌/가수들의 팬, 그리고 K/DA 팬으로 구분 혹은 중첩된다.

    물론 ‘K/DA’ 프로젝트를 위해 캐릭터와 실제 아이돌/가수 양쪽이 별도의 설정작업을 거치기는 했다. 가령 K/DA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 출시된 스킨(게임 내 캐릭터 외형을 바꾸는 아이템) 이름으로, 이 스킨을 통해 캐릭터들은 가수로 변신할 수 있다. 리드보컬, 리드댄서, 래퍼와 같이 한국 아이돌 그룹 특유의 멤버구성 규칙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멤버마다 아이돌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 맥락도 입혔다. 한편, 캐릭터들이 공연할 때 움직임은 게임이 아닌 실제 아이돌/가수의 움직임에서 가져왔다. 아이돌/가수의 일부 안무동작을 모션캡처(motion capture)를 통해 캐릭터에 입힌 것이다. 모션캡처는 가상의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동작의 부자연스러움을 줄이고 인간다움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특기할 점은, 가상과 현실에서 각각 별도로 활동하던 존재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을 통해 실제 무대에서 하나(가상+현실)가 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증강현실은 현실세계에 가상의 대상물을 구현함으로써 실재(reality)를 대체(replacement)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supplement)한다(Azuma, 1997). 덕분에 가상 캐릭터와 현실 아이돌/가수들이 함께 등장해 공연을 펼치는 일이 가능해진다.

    가상의 대상물이 현실세계에 배치됨으로써 가상과 현실이 결합하고, 둘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한다. 게임 캐릭터의 세계관과 인지도, 실제 아이돌/가수의 활동이력과 인지도는, 제3의 프로젝트가 만든 설정 및 실감기술(모션캡처, 증강현실)과 만나 ‘활동 시·공간의 일치’를 만들어낸다. 합동공연을 통해 캐릭터와 아이돌/가수의 각기 달랐던 활동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된다. 아이돌/가수뿐 아니라 캐릭터가 움직이는 공간도 지금 여기(현실)다.

    따라서 이들의 공연은 이용자에게 가상에 대한 원격현전(tele-presence)감만을 제공했던 가상 아이돌과 달리, 현전(presence)감을 제공한다.

    ②-② 에스파는 현실세계에 사는 멤버들과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인 ‘아이(ae)’가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간다는 세계관을 취한다. 아이는 인간의 정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가상세계 속 또 하나의 자신이다. K/DA에서 각기 다른 활동을 펼치는 게임 캐릭터와 아이돌/가수가 임시적으로 결합했다면, 에스파에서는 가상의 아이와 현실 멤버가 명징하게 존재론적 관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이는 가상세계에 사는 도플갱어(doppelgänger)와도 같다. 아바타 아이-카리나는 실제 사람인 리더 카리나에서 비롯된 가상의 존재지만, 인공지능을 지녀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별개의 유기체다. 따라서 현실세계 멤버들은 기존 현실 아이돌들처럼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친다. 그와 동시에 가상세계 멤버들도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모션을 통해 자신들을 알린다. 즉, 둘은 온·오프라인에서 때로는 각자, 또 때로는 함께 활동한다. 에스파에 있어 인공지능은 실제 기술을 그들 자신이나 활동에 접목한 것이 아니라 재현 속 설정일 뿐이다(강신규, 2021).

    이터니티의 경우, 인간과의 소통으로 존재하고 성장한다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지구와 평행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행성 아이아(AIA)에서 사는 아이안(AIAN)들은 어느 날 아이아의 에너지원인 붉은꽃이 시들기 시작하면서 행복하고 찬란하던 일상을 잃게 된다. 아이안들은 붉은꽃을 다시 피을 수 있는 해결책이 지구에 존재하는 사랑임을 알게 되고, 이터니티라는 걸그룹의 모습으로 지구에서 지구인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여정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에스파가 현실의 인물을 토대로 가상의 캐릭터로 만들어 함께 활동시킨다면, 이터니티 역시 현실 인물로 가상 캐릭터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현실 인물이 가상 캐릭터를 위한 재현적 토대만을 제공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르다.

    표1 현실과 가상 사이의 관계에 따른 아이돌의 유형

  • 4현실 신체와 디지털 신체의 공존에서 오는 산업적 가능성과 우려
    가상+현실 아이돌의 첫 번째 산업적 가능성으로, 콘텐츠 IP 활용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콘텐츠 IP’란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 확장과 부가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지식재산권 묶음으로서, 저작권(저작재산권)과 상표권 등을 권리의 법적기반으로 삼는다(이성민·이윤경, 2016). 기존의 아이돌 산업에서는 다양한 미디어·플랫폼을 통해 자체 제작한 콘텐츠나, 권리임대(저작권)에 기반한 2차 저작물을 유통해왔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상표권에 기반해 다양한 연계상품(완구, 문구, 의류, 식기, 식음료 등)을 제작·유통하거나, 광고모델 등 제휴사업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은 대체로 현실 아이돌에 기반한 것이었다. 가상+현실 아이돌은 기존 아이돌에 디지털 실감기술을 탑재함으로써 IP 활용범위를 넓힌다.

    K/DA의 예를 살펴보자. ‘<리그 오브 레전드> 2019 월드 챔피언십’ 결승 무대에서 ‘트루 데미지(True Damage)’가 프로젝트 앨범 ‘자이언츠(GIANTS)’를 공개했다. 트루 데미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평행 세계관의 결과물로, K/DA의 메인 래퍼 아칼리가 K/DA 활동 이후 <리그 오브 레전드> 캐릭터 중 다듬어지지 않은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모아 결성한 힙합그룹이다. K/DA와 마찬가지로 소연, 베키 지, 케케 파머, 덕워스, 투트모세와 같은 실제 글로벌 팝스타들이 노래를 불렀다. ‘2018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K/DA 캐릭터와 실제 가수가 한 데 함께 모여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가상+현실 아이돌을 통해 기존 아이돌 산업에서 보지 못했던 IP 활용이 펼쳐진다.

    둘째, 엔터테인먼트사 입장에서는 매니지먼트 차원의 리스크 감소를 꾀할 수 있다. 현실 아이돌은 각종 구설수와 사건사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들이 살아 숨 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로 인한 멤버의 일탈이나 이탈이 매니지먼트 차원에서는 부담이 된다. 메이크업을 하거나, 악플에 대처하거나, 사생활 이슈에 따른 위험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가상 아이돌은 그런 점에서 장점을 갖는 존재로 산업계에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가상 아이돌은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늙지도 않는다. 현실 아이돌보다 성실하며, 그들의 노동은 무한하다. 물론 이러한 가능성은 우려점과도 닿아 있는데, 관련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그림3 가상+현실 아이돌의 IP 확대: 프로젝트 앨범(왼쪽)과 증강현실

    셋째, 이용자에게 보다 깊이 있는 몰입감을 제공한다. 디지털 실감기술에 의해 펼쳐지는 세계가 현실적일수록 이용자는 비매개에 가까운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현실적’이라 함은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가’가 아니라, ‘가상세계 안에 존재하는 환경, 캐릭터의 행위, 상황과 개연성들이 얼마나 신뢰할 만하고 그럴 듯한가’를 가리킨다. ‘현실적’인 가상세계는 기본적으로 비물질적인 것이지만, 마치 물리적 존재를 제공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여기에 흥미로운 세계관과 정교한 캐릭터가 더해졌을 때 현실성은 극대화된다.

    위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는 네 번째 가능성은 새로운 놀이문화의 창조다. 현실 아이돌은 기본적으로는 닫혀 있지만, 무대 바깥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룹명을 공모하는 등 이용자에게 참여의 여지를 주는 방식으로 일부를 열어젖히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가상+현실 아이돌은 존재(디지털 신체)에 빈 곳을 둠으로써 이용자를 참여하게 만든다. 이용자는 디지털 정보와 데이터에 직접 개입해 아이돌의 신체와 행동을 바꿀 가능성을 손에 넣는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가상+현실 아이돌의 세계관에는 대체로 이용자의 참여를 요청하는 빈 곳이 있다. 가령 이터니티 세계관에 따르면, 행성 아이아에 사는 아이안들에게 행복하고 찬란한 일상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지구인 이용자들이 이터니티와 소통하면서 그들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렇듯 가상+현실 아이돌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며 더 쉽고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팬들에게 전에 없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업적 가능성에 묻혀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지만, 가상+현실 아이돌로 인해 우려되는 점들도 많다.

    첫째, 디지털 신체의 재현에서 오는 근본적인 한계다. 살아있는 인물을 아바타화하거나, 가상의 인물을 새롭게 캐릭터로 만드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사람처럼 신체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당대 산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속성(외모, 성격 등)이 재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가령, 아바타의 외모적 특성(얼굴, 몸매 등)은 현실에는 존재하기 힘든 것으로, 그대로 모방하거나 아름다움에 대한 특정 방향의 인식형성 등 보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재현된 신체는 당대의 산업적 관점을 반영함과 동시에, 기존의 신체(현존하는 신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산업의 장치이다.

    둘째, 윤리적 차원의 문제다. 살아있는 아이돌의 신체와 행동을 그 자체로 직접 수정·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에 대한(의한) 디지털 파생상품(음악, 동영상 등)을 복제·유포하거나 수정·변경하는 일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때문에 2차 창작과정에서 대체 불가한 현실 속 아이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미디어로의 전환(media convergence)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상 아이돌의 경우는 다르다. 미디어 전환 없이 원본과 똑같은 2차 창작물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미 K/DA는 다양한 버전으로 재현된 게임 캐릭터가 존재하며, 실제 이용자들에 의해 해당 캐릭터들에 대한 2차 창작이 활성화돼있다.

    바로 이 지점이 에스파나 이터니티에게는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실 속 실제인물과 가상의 아바타가 동일한 정체성을 갖거나(에스파), 실제인물이 아바타 신체의 토대를 제공(이터니티)하기 때문이다. 이 이슈를 극단까지 몰고 가면 인터랙티브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가 될 수 있다. 보통 셀러브리티의 디지털 동영상은 살아있는 그들이 직접 한 적 없는 행동이나 발언을 완전히 조작된 기술(예를들어, 삭제 및 딥 페이크 같은 합성기술 등)을 통해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디지털 원본(심지어 현실세계 신체와 존재론적으로 이어지는)을 지닌 에스파타 이터니티는 직접적인 포르노 재현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K/DA의 경우도 인터넷에 관련 포르노물이 넘쳐난다. 다만 디지털 아바타 자체에는 인격이 없으므로, 현실 속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생긴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에스파나 이터니티의 경우는 디지털 신체 너머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언제든 상상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둘(현실 멤버와 가상 아바타)이 다르다는 인식은 오히려 이용자의 윤리의식을 희석시킬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은 그림자 노동 이슈다. 앞서 마지막 가능성으로 가상 아이돌의 성실성과 무한한 노동을 언급했지만, 그들이 일하기 위해서는 뒤에서 노동하는 현실세계의 인간들이 필요하다. 가령, 에스파의 ‘아이(ae)’들이나 이터니티 멤버들이 무슨 활동이든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들의 행동과 목소리를 현실세계 누군가가 그들의 행동과 목소리를 만들어야만 한다. ‘아이(ae)’들의 성우나, 이터니티 멤버들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실제 인물이 가상 아이돌의 현실성 유지를 위해 무대 위에 직접 오를 수 없음은 물론이다. 가상(+현실) 아이돌이 전면에 부각될수록, 뒤에서 실존하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 늘어간다(강신규, 2021).
  • 5나오며
    고도화된 디지털 실감(공간구현) 기술, 새로운 경험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경향, 그리고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확대에 따라, 아이돌 산업도 가상세계를 적극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실과 가상이 융합하고, 가상이 현실 못지않게 그리고 때로는 현실보다 더 중요해지는 ‘메타버스(metaverse)’의 유행과도 닿아있다. 특히 미디어·콘텐츠 분야의 메타버스 전환(metaverse transformation)이 빠르게 이뤄지고 그 영향력이 사회·경제·정치·문화 전반으로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발굴 및 이용자 경험확장을 위한 산업 차원과 정부 차원의 고려가 동시에 요청된다.

    먼저, 산업 차원에서는 IP 기반의 새로운 콘텐츠 개발 및 다른 사업 분야와의 제휴·협력을 끊임없이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강조한 윤리적 차원의 문제나 그림자 노동 이슈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노력도 기대해봄직하다. 건강한 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갖는다.

    정부 차원에서는 실감기술 혁신을 위한 R&D 지원과 투자 확대가 있어야 한다. 물론, 아이돌 분야를 위시한 엔터테인먼트 시장변화 전반의 실태와 트렌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 조사 실시를 통해, 본격적인 변화를 준비하는 정책방안의 근간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기술과 관련을 맺으며 변화해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상상력과 전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바라보는 논의들은 비교적 구체적인 기술과 기술적 대상에 주목해왔다. 그렇기에 이미 이뤄진 일, 다시 말해 주변에서 발견되는 징후를 토대로 논의가 이뤄져온 감이 있다(강신규, 2021).

    하지만 기술의 변화는 굉장히 빠르고, 그것이 우리 사회와 일상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점증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필요한 논의의 역할은, 이미 시작된 것뿐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존재할 가능성을 찾는 것일 필요가 있다. 대응을 넘어 갈수록 기민한 예측과 상상력이 중요해짐을 강조하며 글의 끝을 맺는다.
  • Reference

    1. 강신규(2020). 현실로 들어온 놀이: 서드 라이프 시대의 디지털 게임. 원용진·이동연·강신규 등.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커뮤니케이션북스.
    2. 강신규(2021). 가상과 현실 사이에 놓인 아이돌: K/DA와 에스파(aespa)를 중심으로. <문화/과학>, 105호, 212~225쪽.
    3. 이성민·이윤경(2016). <콘텐츠 지식재산활용산업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4. 한국콘텐츠진흥원(2020). <2019 캐릭터 산업 백서>.
    5. Azuma. R. T.(1997). A survey of augmented reality. Presence: Teleoperators and virtual environments. 6(4), pp.35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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