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문
생성형 인공지능(이하 AI)의 발전으로 영상 제작의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높은 완성도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비용과 반복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누구나 AI를 활용하는 시대에 미디어 기업은 무엇을 경쟁력으로 차별화할 수 있을까. 본 글은 이 질문의 실마리로 미디어 제작에 맞춘 '버티컬 AI(특화형 AI)'에 주목한다. 범용 AI가 확산되는 가운데 특화형 AI가 필요한 이유와 미디어 제작현장에서 나타나는 활용 사례를 살펴보고, 미디어 기업이 보유한 콘텐츠와 제작 노하우를 새로운 서비스와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기술적 가능성과 실제 활용 사이의 시간차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향후 미디어 기업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1. 들어가며: AI 영상 제작은 현재 어디까지 왔는가
2026년 4월, OpenAI는 영상 생성 AI 소라(이하 Sora)의 웹과 앱 서비스를 종료했다. Sora API도 같은 해 9월 종료할 예정으로, 사실상 독립 영상 생성 서비스로서의 Sora를 단계적으로 정리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텍스트와 참고자료만으로 영상을 만드는 미래를 보여주던 기업이 독립 영상 서비스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로이터(Reuters)는 Sora 운영에 상당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했고, OpenAI가 기업용 서비스와 코딩 도구 등 다른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전략적 판단도 함께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AI의 영상 생성 서비스 시도 자체의 실패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품질 영상을 생성하는 기술과 이를 경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서비스로 운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생성형 AI가 처음 미디어산업에 제시한 비전은 이른바 "창작의 민주화"였다. 원하는 장면을 글로 설명하고 몇 가지 이미지나 참고자료를 제시하면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전문적인 제작기술이나 대규모 자본이 없어도 누구나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실제로 쇼트 폼 콘텐츠, 디지털 광고, SNS 영상 등 비교적 짧고 빠른 제작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상당 부분 현실이 되고 있다.
그래서 생성형 AI가 등장하고 그러한 제작방식이 기술발전과 함께 금방 영화나 방송 콘텐츠와 같은 고품질 콘텐츠까지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다. 최근 '클링(Kling)', '시댄스(Seedance)' 등 영상에 특화된 AI 서비스가 멀티숏, 레퍼런스 기반 생성, 장면 연장과 편집 등 보다 전문적인 제작 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며, 프리미어(Premiere) 같은 기존 영상 편집·제작도구에도 생성형 AI 기능이 빠르게 결합되고 있다. 이는 영상 AI의 경쟁축이 단순한 생성 품질에서 제작자가 원하는 결과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실제 제작공정에 연결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AI 기술이 고품질 하이엔드 콘텐츠 제작에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문제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생성과 선별, 수정과 보정을 반복하면서 크레딧과 연산비용, 작업자의 시간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현장에서는 15분짜리 단편영화를 AI로 높은 완성도까지 구현하려면 토큰 비용만 1,200만 원에서 1,500만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1) AI 영상은 한 번 생성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수준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만들고 수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성형 AI가 일부 촬영·제작비를 줄일 수는 있지만, 높은 완성도를 요구할수록 새로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미디어산업은 AI를 통해 누구나 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이상론과, 고품질 콘텐츠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현실론이 공존하고 있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AI가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기술적 가능성을 실제 제작현장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한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방법은 아직 모색되고 있는 단계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디어 기업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범용 AI를 누구나 활용하는 시대에, 미디어 기업은 무엇을 고유한 경쟁력으로 축적하고 이를 어떻게 차별화된 서비스와 새로운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본 글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버티컬 AI(Vertical AI, 특화형 AI)의 흐름에 주목한다. 범용 AI2)가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특화형 서비스가 왜 다시 중요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미디어산업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어 미디어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와 제작 노하우의 가치, 이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 나아가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로 연결하기 위한 조건을 차례로 짚어보고자 한다.
- 1) 전자신문. (2026. 07. 23.). "15분 AI 영화에 토큰비 1500만원"… 영상업계, 문체부에 지원 확대 요청. https://m.etnews.com/20260723000384
- 2) 본 글에서 범용 AI는 특정 산업이나 업무에 한정되지 않고 글쓰기, 자료분석, 코딩 등 다양한 요청을 처리하거나 필요한 도구를 연결하는 AI로 정의한다. ChatGPT·Claude·Gemini와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2. 범용 AI는 모든 서비스를 삼킬 것인가
2-1.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대체하기 시작한 범용 AI
이전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은 다양한 서비스가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넷플릭스는 영상 시청을, 에어비앤비는 숙박 중개를, 우버는 이동을 중심으로 이용자를 확보했다. 앱스토어와 같은 유통경로는 이들 서비스를 세계의 이용자와 연결했다. 기업마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범용적인 기술 기반 위에서 특정 수요를 해결하는 서비스가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러한 관계가 더 복잡해진다. AI는 다른 기업의 서비스 개발에 활용되는 기반 기술이면서, 동시에 이용자의 요청을 직접 처리하는 서비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당 변화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도구를 사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 기능에서 두드러진다.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는 여러 번의 파편적인 질문이 아닌 이용자가 미리 입력하고 허용한 파일과 도구를 활용해 자료를 정리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에이전트 기능이다. 가령 광고 실적자료를 비교해 보고서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 사람이 여러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대신 AI가 작업을 수행하도록 맡기는 방식이다. 원하는 기능을 말로 설명하고 AI가 스스로 해당 작업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쳐가는 에이전트 기능인 바이브 코딩(Vibe Coding)도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드는 문턱을 낮추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움직임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에 위협이 되고 있다. AI가 업무를 처리하고 필요한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준다면, 고객이 별도의 서비스를 구매할 이유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6년 1월 앤트로픽은 코워크에 법률·영업·마케팅 등을 위한 플러그인3)을 공개했다. 이후 2월 초 미국과 유럽의 소프트웨어와 전문정보 서비스 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SaaS4)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AI를 생산성 향상의 도구뿐 아니라 기존 사업을 대체할 경쟁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 3) 플러그인은 특정 업무의 지침과 도구를 AI에 덧붙이는 확장 기능
- 4) SaaS(Software as a Service): 공급자가 소프트웨어와 운영 환경을 관리하고, 이용자는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기능을 제공받는 방식이다. 주로 구독료나 사용량에 따른 요금을 지불한다. '특화'의 정도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제공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
2-2. 범용 AI가 편리해도 특화가 필요한 이유
범용 AI는 편리하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아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대화창에 원하는 일을 설명하면 된다. 그러나 요청이 간단하다고 처리 과정까지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복잡한 업무에서는 AI가 작업 방법을 정하고, 자료를 확인하고, 결과를 수정하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
방송사의 인터뷰 정리를 예로 들어보자. 매번 전체 영상을 올리고 인물 구분과 요약 방식, 자막 표기를 다시 설명한다면 같은 작업이 반복될 수 있다. 반면 이 업무에 맞춘 프로그램은 음성을 글로 바꾼 결과를 저장해 재사용하고, 회사의 자막 표기를 적용하며, 요약이 필요한 부분만 AI에 전달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단순한 형식 변경은 일반 프로그램에 맡기고, 맥락을 판단해야 하는 작업에만 AI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면 AI 이용량을 계산하는 토큰, 크레딧뿐 아니라, 결과를 기다리고 다시 설명하며 수정하는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작고 저렴한 모델을 사용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작업에 AI가 필요한지, 어떤 결과를 재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순서로 처리해야 시행착오가 줄어드는지를 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특화형 서비스의 가치가 생긴다. 개인도 바이브 코딩으로 유용한 도구를 만들 수 있지만, 이를 여러 사람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로 발전시키려면 데이터와 작업절차, 품질기준과 오류 대응을 정비해야 한다. 기업이 개발인력과 현장 전문가를 투입하는 이유도 이러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사용하면서 발견한 문제를 개선하면 제작 노하우가 프로그램과 작업방식에 축적될 수 있다. 다만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비용이 드는 만큼, 사용 빈도가 낮은 업무에서는 범용 AI를 직접 이용하는 편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특화형 서비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범용 AI가 해당 작업을 전혀 할 수 없어서만은 아니다. 범용 AI로도 가능한 일을 더 적은 시행착오와 비용으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며 처리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 장에서 살펴본 반복 생성과 수정에 따른 비용 문제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2-3. 범용 AI 안으로 통합될까, 독립 서비스로 성장할까
특화형 서비스의 필요성이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독립적인 서비스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범용 AI 사업자가 해당 기능을 직접 제공하거나, 외부 기업의 서비스를 자신의 플랫폼 안으로 연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화의 필요성과 함께 이용자가 어디에서 작업하고, 필요한 기능을 누가 제공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먼저 이러한 서비스 제공 구조를 통합형과 독립형으로 구분한다. 통합형은 이용자가 범용 AI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자체 기능을 활용하는 완전 통합형과 외부 서비스를 연계하는 연결 통합형으로 나눈다. 독립형은 이용자가 특정 목적의 서비스를 직접 선택하고, 해당 서비스의 작업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 구분 | 통합형 | 독립형 | |
|---|---|---|---|
| 완전 통합형 | 연결 통합형 | ||
| 주요 이용 접점 | 범용 AI 서비스 (ChatGPT, Claude, Gemini 등) |
별도의 특화형 서비스 (Kling, seedance 등) |
|
| 핵심 기능 제공 주체 | 범용 AI 사업자 | 외부 특화형 서비스 사업자 | 해당 특화형 서비스 사업자 |
| 작업 처리 방식 | 범용 AI의 내장 모델·도구를 활용해 직접 처리 (이 AI가 직접 처리한다.) |
범용 AI가 외부 서비스의 기능을 호출하여 처리 (이 AI가 필요한 서비스를 불러온다.) |
자체 작업환경에서 필요한 모델·도구를 조합하여 처리 (이 작업에 맞는 서비스를 직접 이용한다.) |
| 기존 특화형 서비스와의 관계 | 해당 기능의 대체·내부화 가능 | 외부 서비스의 기능을 플랫폼 안에서 활용 | 독자적인 작업환경과 고객관계를 유지 |
| 주요 경쟁요소 | 기능의 범위와 이용 편의성 | 서비스 연결성, 전문 기능의 품질, 참여기업 간 가치배분 | 업무 적합성, 작업 효율, 고객관계와 서비스 차별성 |
우선, 완전 통합형은 범용 AI의 자체 기능으로 작업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챗GPT(ChatGPT) 안에서 자체 이미지 생성 기능을 이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별도의 제작도구를 찾지 않고 대화창에서 원하는 결과를 요청하고 수정하는 것으로, 기존 서비스의 기능이 범용 AI에 포함되는 방향이다. 다음으로, 연결 통합형은 범용 AI가 외부 서비스의 기능을 불러오는 방식이다. 어도비(Adobe)는 2025년 12월 포토샵(Photoshop)·어도비 익스프레스(Adobe Express)·아크로뱃(Acrobat)의 일부 기능을 챗GPT 안에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는 챗GPT에서 요청하지만 실제 편집 기능은 어도비가 제공한다. 전문 서비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창구가 범용 AI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간 연결에는 프로그램끼리 요청과 결과를 주고받는 통로인 API 등이 활용된다.
한편, 독립형은 이용자가 특정 작업을 위해 별도의 서비스를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다. 클링의 전용 제작환경에서 참고자료를 입력하고 영상을 생성·조정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독립적이라는 것은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한다는 뜻이 아니라, 별도의 작업환경과 고객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이용자가 해당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하려면 범용 AI를 직접 사용할 때와 구별되는 편의성과 작업 효율을 제공해야 한다.
세 유형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어도비처럼 자체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범용 AI 안에도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경쟁은 어느 한 유형이 다른 유형을 대체하는 문제뿐 아니라, 어떤 기능을 직접 제공하고 어떤 기능을 다른 서비스와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기업의 자료와 업무방식에 맞춰 AI를 구성하는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범용 AI 안에서 기능을 제공하든 독립 서비스를 운영하든, 중요한 것은 해당 업무에 필요한 자료와 노하우를 반영해 차별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완전 통합형, 연결 통합형, 독립형 가운데 어느 구조가 우세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업은 서비스의 성격과 고객 접점, 비용과 품질을 고려해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거나 여러 방식을 병행할 수 있다. 다만 어느 구조를 선택하더라도 범용 AI와 구별되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화의 깊이가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미디어 분야에서 특화는 어디에서 시작해 어느 수준까지 깊어질 수 있을까.
3. 미디어 버티컬 AI는 어디까지 특화되는가
앞 장에서는 AI 서비스의 제공 방식을 완전 통합형, 연결 통합형, 독립형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AI 기술을 어디에 이용하는가와 해당 미디어에 얼마나 깊게 특화되어 있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다. 범용 AI 안에서도 영상 제작에 특화된 기능을 제공할 수 있고, 별도의 서비스에서도 기존 범용모델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형만 버티컬 AI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본 글에서는 미디어 버티컬 AI를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에 필요한 자료, 작업 방식, 품질기준 등을 반영한 AI 기술·서비스로 정의한다. 범용 AI가 여러 분야에 넓게 적용된다면, 버티컬 AI는 특정 분야의 요구에 깊게 맞추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화는 기존 AI의 활용 방식을 맞추는 데서 시작해 제작공정의 설계, 나아가 모델의 학습까지 확장될 수 있다.
3-1. 활용 특화: 제작자료와 업무지침에 맞춰 AI 활용
특화의 출발점은 기존 AI가 참고할 자료와 따라야 할 지침을 미디어 업무에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기존 구성안을 제공하고, 정해진 형식에 맞춰 인터뷰 질문이나 새로운 구성안을 작성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모델 자체를 바꾸기보다 AI에 무엇을 알려주고 어떤 결과를 요청할지를 정리하는 것에 가깝다.
KBS의 사내 AI 포털 카이로스(KAIROS)와 AI 챔프의 관계를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카이로스는 업무지원 AI와 활용사례 공유 등을 모은 플랫폼이며, AI 챔프는 부서별로 필요한 챗봇을 만들고 개선하는 담당 인력이다. KBS가 공개한 사례에는 인터뷰 구성안과 질문 준비, 라디오 선곡 기록 분석, 다시 듣기에서 유튜브용 소재를 찾는 활용 등이 포함된다. AI 챔프가 별도의 AI 제품인 것은 아니며, 현장의 요구를 도구에 반영하는 사람과 운영체계라는 점에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사례의 의미는 직원들에게 AI 이용권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제작 경험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자료와 지침으로 바꾸는 데 있다. 활용 특화는 범용 AI 안의 맞춤형 기능으로도, 카이로스처럼 별도의 사내 환경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접속하는 화면보다 제작 현장의 자료와 기준이 실제 작업에 반영되는가이다.
- 5) Mylove KBS. (2026. 07. 01). KBS, 자체 AI 포털 '카이로스' 도입 "쓸수록 진화하는 KBS의 미래 두뇌" https://mylovekbs.kbs.co.kr/index.html?source=mylovekbs&sname=mylovekbs&stype=magazine&contents_id=70000000403746
3-2. 공정 특화: 필요한 작업을 적은 시행착오로 처리
특화가 작업공정까지 확장되면, 자료와 지침뿐 아니라 어떤 순서로 처리하고 무엇을 수정하며 언제 검수할지가 도구에 반영된다. 제작자가 매번 AI에게 모든 과정을 설명하는 대신, 반복되는 작업에 맞춰 처리방식을 갖춰두는 것이다.
플로리스 AI(Flawless AI)의 영화 후반작업 도구 DeepEditor가 이를 보여준다. 회사가 공개한 제작자 인터뷰에 따르면 영화 <언더커버 대디>(Playdate)는 관람등급에 맞게 일부 대사를 바꾸기 위해 이 도구를 활용했다. 배우가 새로 녹음한 대사에 맞춰 기존 화면의 입모양을 수정했고, 저비용의 미리보기로 여러 대안을 확인한 뒤 최종 결과물을 완성했다. 영상 전체를 다시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촬영한 장면에서 바꿔야 하는 부분만 수정하고 확인하는 절차에 맞춘 사례다.
어도비 프리미어(Adobe Premiere)의 Generative Extend도 편집자가 겪는 구체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인물의 반응을 조금 더 보여주거나 장면 전환에 필요한 분량이 부족할 때, 기존 영상이나 배경음을 연장하는 기능이다. 제작자는 작업 중인 편집 화면에서 필요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새로운 제작방식으로 모든 것을 대체하기보다, 기존 편집 작업에서 부족한 부분에 AI를 배치한 것이다.
공정 특화는 개별 제작도구를 넘어 제작 전반을 연결하는 형태로도 확장되고 있다. CJ 4DPLEX의 AI 제작 플랫폼 GEN.AI는 기획·촬영·후반작업뿐 아니라 예산·일정·인력 운영 등 제작 전 과정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이를 실제 영화·영상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개별 생성도구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작공정 전체를 AI와 데이터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개별 기업 내부를 넘어 산업 생태계 차원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CJ ENM은 2026년 제작사·AI 기업·대학 등이 참여하는 AI 콘텐츠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켜 공동 프로젝트와 기술 실증, 인재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 버티컬 AI의 경쟁력이 단일 모델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제작현장의 노하우와 기술 역량을 연결하는 협업 체계에서도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정 특화의 가치는 AI 기능의 수보다 불필요한 생성과 수정, 자료 이동과 검수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있다. 필요한 부분만 처리하고 결과를 재사용하도록 설계한다면 앞 장에서 살펴본 비용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다만 도구 이용료와 검수시간까지 포함해 실제 효과를 판단해야 하며, 특화된 도구라고 해서 항상 더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3-3. 모델 특화: 영상 제작에 필요한 능력을 학습에 반영
모델 특화는 AI의 학습과 설계에 미디어의 요구를 반영하는 방식이다. 전문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모델을 조정하거나, 영상의 움직임과 장면 연결을 처리하는 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AI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바꾸는 데서 나아가, AI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할지를 바꾸는 것이다.
쿠아이쇼우(Kuaishou)의 클링은 자체 개발한 영상 생성모델로, 영상 속 공간과 시간의 변화, 인물과 물체의 움직임을 처리하도록 설계됐다. 최근의 Kling VIDEO 3.0 계열에서도 여러 장면을 구성하는 기능과 참고자료에 등장하는 인물·사물의 일관성, 촬영 구도와 장면 제어가 강조된다. 개별 영상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같은 인물과 공간을 유지하면서 콘텐츠를 이어가는 요구에 대응하려는 방향이다.
바이트댄스(ByteDance)의 시댄스는 이러한 특화에 제작자의 판단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보여준다. 회사가 공개한 개발 설명에는 영상자료를 선별하고 인물의 행동과 카메라 움직임 등을 설명하는 정보를 학습에 활용한 과정이 담겨 있다. 영화감독과 업계 전문가도 움직임의 안정성, 장면 전환, 미적 품질 등을 평가하는 기준 마련에 참여했다. 미디어의 자료와 전문적 판단이 모델을 학습시키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 특화는 독립 서비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구글이 2025년 공개한 베오(Veo)의 제공방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제미나이(Gemini) 안에서 베오로 영상을 생성하는 경우는 완전 통합형으로, 별도의 영상 제작도구 Flow에서 베오를 활용하는 경우는 독립형으로 볼 수 있다. Flow는 베오 등의 모델에 인물과 참고자료 관리, 장면 연결과 촬영 구도 조정 기능을 결합했다. 같은 영상모델이 범용 AI 안에도 들어가고, 별도의 제작환경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앞 장에서 다룬 Sora의 웹·앱 서비스 역시 OpenAI가 운영했지만 별도의 영상 생성 서비스였다는 점에서 독립형의 과거 사례로 다룰 수 있다. 따라서 개발기업이 범용 AI 사업자인지 여부만으로 그림의 위치를 정해서는 안 된다.
API 제공 여부만으로 연결 통합형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범용 AI가 외부의 영상모델을 불러오면 연결 통합형이지만, 별도의 제작서비스가 같은 API를 활용한다면 독립형이다. 그림에서는 모델명이나 기업명만 표시하기보다 제미나이에서 사용하는 베오, 베오를 활용한 Flow처럼 구체적인 이용방식을 기준으로 사례를 배치해야 한다.
미디어 기업이 선택해야 할 것은 가장 깊은 수준의 특화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에서 효과를 낼 수 있는 특화의 범위와 제공방식이다. 구성안 작성에는 자료와 지침을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고, 반복되는 후반작업에는 공정 설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기존 모델이 필요한 결과를 충분히 만들지 못할 때에는 추가 학습이나 모델 개발을 검토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은 통합형과 독립형 어느 구조에서도 가능하다.
활용 특화에서는 자료와 지침에, 공정 특화에서는 작업순서와 검수방식에, 모델 특화에서는 학습과 평가에 제작 전문성이 반영된다. 이들을 뒷받침하는 공통 자산은 미디어 기업이 축적한 콘텐츠 데이터와 제작 노하우다. 그렇다면 미디어 기업들은 이러한 자산을 AI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어떻게 정리하고, 보호하며, 새로운 서비스와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 6) befores&afters. (2024. 09. 17). Flawless has released its DeepEditor Beta. https://beforesandafters.com/2024/09/17/flawless-has-released-its-deepeditor-beta/
Adobe Blog. (2024. 10. 14). Generative Extend in Premiere Pro (beta). https://blog.adobe.com/en/publish/2024/10/14/generative-extend-in-premiere-pro - 7) CJ NEWSROOM. (2026. 06. 08). GEN.AI가 그리는 미래: 수개월 걸리는 작업을 수일로, 창작자 자유도도 높여. https://cjnews.cj.net/gen-ai%ea%b0%80-%ea%b7%b8%eb%a6%ac%eb%8a%94-%eb%af%b8%eb%9e%98-%ec%88%98%ea%b0%9c%ec%9b%94-%ea%b1%b8%eb%a6%ac%eb%8a%94-%ec%9e%91%ec%97%85%ec%9d%84-%ec%88%98%ec%9d%bc%eb%a1%9c-%ec%b0%bd%ec%9e%91/
4. 버티컬 AI 시대, 미디어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앞 장에서 살펴본 버티컬 AI의 특화는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AI가 참고할 자료, 제작자가 일하는 방식, 결과물의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함께 필요하다. 미디어 기업이 주목해야 할 것도 이 지점이다. 새로운 AI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축적해 온 데이터와 콘텐츠, 그리고 제작 경험을 AI가 활용할 수 있는 자산으로 바꾸고, 이를 새로운 서비스와 사업으로 연결하는 것이 미디어 기업의 핵심 과제이자 경쟁력이다.
4-1. 보유한 콘텐츠를 골든 데이터셋으로 전환
방송사와 같은 미디어기업이 많은 영상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AI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장면이 담겨 있는지, 어떤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지,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가 정리돼야 한다. 예를 들어 시대극의 배경을 생성하려면 단순히 오래된 영상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가 확인되고 건물·의상 등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영상의 양보다 특정 작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때 참고할 개념이 골든 데이터셋(Golden Dataset)이다. AI 평가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질문과 정답 등을 갖춘 기준자료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본 글에서는 이를 미디어 제작에 맞춰, 품질과 이용 조건을 확인하고 필요한 설명과 전문가 판단을 정리한 고신뢰 핵심 데이터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단순히 화질이 좋은 영상이 아니라, AI가 무엇을 참고하고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자료다.
MBC가 2025년 발표한 데이터 구축 사례는 이러한 전환을 보여준다. MBC는 한국의 자연과 시대 배경이 담긴 영상을 300시간 이상 수집하고, 이를 1만 개 이상의 클립으로 가공했다. 여기에 장면과 맥락을 상세히 설명하는 문장을 붙여 AI 학습용 데이터로 구성했다. 보관된 영상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바꾸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제작자의 판단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 어떤 장면을 선택했는지, 무엇을 수정했는지, 어떤 결과가 품질 검수를 통과했는지를 남기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가 기존 아카이브에 모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앞으로의 제작 과정에서 함께 축적해야 한다. 모든 영상을 한꺼번에 정리하기보다 자막, 장면 검색, 배경 생성처럼 활용할 업무를 먼저 정하고 필요한 자료부터 검증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이렇게 마련한 기준자료는 새로운 모델이나 도구를 도입할 때 결과를 비교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4-2. 핵심 데이터를 지키면서 외부 AI를 활용할 방안 모색
데이터와 제작 노하우의 가치가 커질수록 이를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사용하는지도 중요해진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프라이빗 AI(Private AI)라는 관점이다. 모든 모델을 직접 개발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데이터가 어디에서 처리되고 누구에게 전달되는지를 기업이 관리할 수 있는 AI 이용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외부 AI를 기업용 계약에 따라 이용하거나, 회사 내부 서버와 편집용 컴퓨터에서 실행할 수 있는 모델을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 클라우드 안에 접근과 운영환경을 구분해 구축할 수도 있다. 선택할 때에는 기술의 이름보다 실제 데이터 처리방식과 운영 부담을 살펴봐야 한다.
| 구분 | 운영 방식 | 주요 장점 | 주요 고려사항 | 미디어 분야 적용 예시 |
|---|---|---|---|---|
| 기업용 API 활용 | 기업 내부 시스템에서 필요한 데이터와 작업을 외부 AI 서비스에 전달하고 결과를 반환받는 방식 | 구축 부담이 낮고 최신 AI 모델의 성능을 신속하게 활용 가능 | 데이터 전송 범위, 저장기간, 학습 활용 여부, 계약조건 및 접근권한 확인 필요 | 번역·요약·자막 생성, 콘텐츠 분류 및 메타데이터 생성 |
| 전용·프라이빗 클라우드 | 클라우드 환경에서 기업별 접근권한과 데이터 처리영역을 분리하여 AI를 운영하는 방식 | 클라우드의 확장성을 활용하면서 기업 차원의 데이터·권한 관리 가능 | 데이터 저장·처리 위치, 외부 서비스 연계 범위, 운영비용 및 권한관리 필요 | 사내 AI 플랫폼, 아카이브 검색, 제작지원 서비스 |
| 온프레미스(On-premise) | AI 모델과 데이터를 기업 내부 서버 또는 데이터센터에서 직접 운영하는 방식 | 핵심 데이터와 시스템에 대한 높은 통제 가능 | GPU·서버 구축비용, 모델 운영·업데이트, 전문인력 확보 필요 | 미공개 원본영상 분석, 내부 아카이브·권리정보 활용 |
| 온디바이스(On-device) | AI 모델을 편집용 PC, 카메라, 단말 등 개별 기기에서 실행하는 방식 | 데이터의 외부 전송을 최소화하고 실시간 처리 가능 | 기기 성능, 모델 크기, 처리 가능한 업무범위에 제약 | 영상 검색·분류, 편집 보조, 촬영·중계 현장의 실시간 AI |
| 하이브리드(Hybrid) | 데이터의 중요도와 업무 특성에 따라 API·클라우드·온프레미스·온디바이스를 조합하는 방식 | 보안·성능·비용을 업무별로 조정 가능 | 데이터 등급과 처리 위치에 대한 명확한 기준 및 통합 관리체계 필요 | 핵심 원본은 내부 처리하고 번역·요약 등 일부 기능은 외부 AI 활용 |
영상 제작에서도 이러한 선택을 확인할 수 있다. 어도비 프리미어의 미디어 인텔리전스는 이용자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분석하고 필요한 장면을 찾는다. 어도비는 해당 기능의 영상 분석과 검색이 인터넷 연결 없이 이루어지며, 영상과 검색 내용을 모델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외부 기업이 개발한 AI를 사용하면서도 원본 영상을 외부에 보내지 않는 방식이 가능한 사례다. 다만 이는 해당 기능의 처리방식이며, 같은 프로그램의 모든 AI 기능이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미디어 기업은 업무에 따라 이러한 방식을 혼합할 수 있다. 미공개 원본과 민감한 제작정보는 내부에서 처리하고, 외부 제공이 허용된 자료만 외부 AI에 보내는 식이다. 핵심은 모든 데이터를 가두거나 모든 작업을 외부에 맡기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자료의 중요도와 작업의 성격에 맞춰 처리 방법을 정하는 것이다. 기업용 계약이나 사내 접속 창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하기보다, 실제 전송·보관 조건과 이용권한을 확인해야 한다.
4-3. 데이터와 제작 노하우를 서비스와 수익으로 연결 시도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호하는 목적은 보관 자체에 있지 않다. 이를 활용해 제작방식을 개선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회사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검색·자막·편집 지원 도구를 개발할 수 있다. 이러한 도구가 현장에서 효과를 입증한다면, 다른 제작사나 광고주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발전시키는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 내부의 제작 노하우를 외부에 제공할 수 있는 기능으로 바꾸는 것이다.
또 다른 방향은 데이터의 이용권을 제공하는 라이선싱이다. 내부 경쟁력으로 남겨둘 자료와 외부 제공이 가능한 자료를 구분하고, 어떤 목적으로 얼마 동안 사용할 수 있는지와 대가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영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거래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이용을 허락할 수 있는 권리와 조건을 확인하는 것이다. 데이터 사업화는 자료를 판매하는 일인 동시에 이용조건과 보상방식을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상 데이터에 대가를 지급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어도비는 어도비 스톡(Adobe Stock)의 동영상을 파이어플라이(Firefly) 학습에 활용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동영상을 포함한 적격 콘텐츠 제공자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다. 학습 대상으로 검토된 콘텐츠와 기존 라이선스 실적 등을 반영한 방식이다. 이는 생성된 영상마다 원본의 기여도를 계산하는 정산 체계는 아니지만, 콘텐츠 제공에 따른 가치를 AI 사업의 보상으로 연결하려는 사례로 볼 수 있다.

- 8) Adobe Blog. (2023. 09. 14). 파이어플라이로 더욱 확장될 어도비 스톡의 세계. https://blog.adobe.com/ko/publish/2023/09/14/adobe-firefly-adobe-stock
이용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BBC·FT·가디언·스카이뉴스·텔레그래프 등 영국 5개 매체가 주축이 되어 2월에 창립한 비영리 언론 연합인 SPUR(Standards for Publisher Usage Rights)은 2026년 6월 AI가 콘텐츠를 가져오고, 답변의 근거로 사용하거나 화면에 표시하는 등의 기록을 보고하기 위한 표준 초안을 공개했다. AI 기업이 언론 콘텐츠를 무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정당한 대가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종의 '표준 계약 체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저널리즘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며 직접 대가를 징수·배분하는 정산기관은 아니다. 다만 콘텐츠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이용허락과 보상체계도 설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방송영상 분야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 9) 한국기자협회. (2026. 08. 06). "포털 이어 AI에도 주도권 넘길건가"… 해외언론 글로벌 연대. 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61405
방송영상 데이터의 거래를 발전시키려면 이러한 논의를 제작 현장에 맞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학습용 데이터의 이용대가와 장면 검색·제작도구의 이용료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설계할 수 있다. 자료의 권리자와 허용 용도를 확인하고, 계약에서 정한 이용내역을 기록하며, 대가가 관련 권리자에게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정해야 한다. 산업 차원에서는 공통 권리정보와 거래 기준, 계약 가이드와 이용기록 체계를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책 지원 역시 데이터 구축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서비스 개발과 거래·정산으로 이어지는 조건까지 함께 다룰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향은 AI를 스스로 개발·운영하고 통제할 역량을 강조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의 논의를 미디어 기업의 관점에서 확장해 보는 출발점이 된다. 소버린 AI가 주로 국가의 인프라·데이터·기술역량을 중심으로 논의된다면, 미디어 기업에서는 핵심 자료와 제작방식의 통제권, 외부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 창출한 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조건에 주목할 수 있다.
결국 미디어 기업의 과제는 모든 AI를 직접 만드는 것도, 보유 데이터를 무조건 외부에 제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자체 경쟁력으로 남기고, 무엇을 어떤 조건으로 연결하며, 그 결과를 어떻게 서비스와 수익으로 전환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범용 AI를 누구나 이용하는 시대에 미디어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은, 축적된 콘텐츠와 제작 경험을 다른 기업도 필요로 하는 데이터와 전문 기능으로 바꾸는 데서 만들어질 수 있다.
5. 나오며: 시간차 공백을 미디어 혁신의 기회로
영상 AI의 기술적 발전이 곧바로 모든 제작공정의 경제적인 자동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고 권리를 정비하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며, 대용량 영상을 학습하고 생성하는 데에도 많은 연산자원이 요구된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반복 생성과 수정 역시 남아 있다. 결국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현장에서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시간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시간차는 미디어 기업에 단순한 유예기간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력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모든 제작과정을 한꺼번에 AI로 대체하기보다 반복 생성과 수정이 많은 공정부터 실험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품질기준, 제작자의 판단을 조직의 자산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내부 제작도구를 넘어 다른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버티컬 AI 서비스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생긴다.
동시에 미디어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어떻게 자원화하고 거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핵심 데이터는 내부 경쟁력으로 활용하되, 외부 제공이 가능한 데이터는 권리와 이용조건을 정비해 AI 학습과 서비스에 제공하고 적절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의 이용내역을 확인하고 권리자에게 대가를 배분할 수 있는 계약·기록·정산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결제 기술 역시 향후 소액·반복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는 보완수단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기술 도입에 앞서 권리와 정산의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과정에는 개별 기업의 노력뿐 아니라 정책적·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단순한 AI 이용료 지원이나 데이터 구축을 넘어 방송사·제작사·기술기업이 실제 제작공정에서 비용과 품질을 검증할 수 있는 실증환경을 조성하고, 데이터의 권리정보와 표준계약, 이용기록 및 정산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지금의 시간차는 범용 AI가 더 저렴하고 정교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다. 미디어 기업이 자신이 보유한 데이터와 제작 노하우를 AI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간이다. 한쪽에서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버티컬 AI를 실험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데이터의 활용과 거래·정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질 때 미디어 기업은 AI를 단순히 구매해 사용하는 위치를 넘어, AI 생태계에 필요한 데이터와 전문 기능을 제공하고 그 가치를 확보하는 주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