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문
2026년 6월 JTBC의 채무불이행으로 중앙그룹 주요 계열사가 회생절차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 글은 이를 스튜디오 체제 10년의 흐름 속에서 살펴본다. 스튜디오 전환은 글로벌 OTT 확산기에 OTT 시장의 팽창에 따른 국내 기업의 합리적 대응이었다. 그러나 여러 플랫폼이 한국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사 줄 것이라는 전제는 빗나갔다. 시장은 넷플릭스 1강 체제로 굳었고 제작비는 치솟았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CJ와 SBS는 베팅을 줄이고 판로를 확보하며 대응했다. 반면 중앙그룹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SLL중앙이라는 스튜디오에 집중하며 차입과 보증으로 확장을 이어갔고, 그 부담은 JTBC에 집중되며 그룹이 붕괴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사태는 산업이 침체되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시장을 낙관한 중앙그룹의 대응이 문제였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토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기업의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1. 들어가며: 미디어 제국의 균열
JTBC는 2011년 12월 1일 종합편성채널로 개국한 뒤 불과 몇 년 만에 지상파 중심의 방송 질서를 흔들며 국내 미디어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뉴스룸>을 앞세운 JTBC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연속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1위에 올랐다.1) 드라마에서는 <SKY 캐슬>의 23.8%에 이어 <부부의 세계>가 28.4%를 기록하며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웠다.2)
중앙그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방송사 안에 묶여 있던 제작 기능을 떼어내 독립 스튜디오로 키우는 '스튜디오 시스템' 전환에 그룹의 역량을 쏟아부었다. 콘텐트리중앙(당시 제이콘텐트리)은 2019년 필름몬스터, 비에이엔터테인먼트, 퍼펙트스톰필름을 잇달아 인수했다.3) 2021년까지 2년 새 국내 제작사 12곳을 추가로 인수하거나 지분을 확보했고, 미국에 현지법인을 세워 할리우드 제작사 윕(wiip)까지 품었다.4) 스튜디오 자회사(現 SLL 중앙)는 프리 IPO로 4,000억 원 규모의 외부 투자를 유치했다.5) 확장은 스포츠로도 이어졌다. JTBC는 2026~2032년 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했고, 그룹은 2026년과 2030년 FIFA 월드컵 중계권까지 손에 넣었다. 보도, 드라마, 예능, 스포츠,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갖춘 글로벌 종합 콘텐츠 그룹으로의 도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그 시발점이었던 JTBC가 2026년 6월 12일 206억 원 규모의 유동화 차입금을 만기에 상환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흔들렸다. JTBC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는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을 회생절차나 워크아웃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그룹의 주요 사업 대부분이 매각 대상에 올라 있다. 워크아웃 중인 중앙일보는 신주 발행 방식의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6) JTBC 역시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을 위한 주관사 선정 단계에 들어섰다.7) 매각이 계열사별로 이뤄진다면, 종편 개국 15년 만에 한국 미디어 산업의 커다란 한 축으로 떠올랐던 미디어 제국은 해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이들이 그 원인으로 스튜디오 체제 전환 이후 이어진 중앙그룹의 공격적인 확장을 지목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야를 넓히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2016년 스튜디오드래곤을 시작으로 스튜디오를 세운 거의 모든 기업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흑자를 내던 곳은 이익률이 반 토막 났고, 적자로 돌아선 곳도, 인수한 제작사의 가치인 영업권을 장부에서 덜어낸 곳도 있다. 중앙그룹 사태를 개별 기업의 무리한 확장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산업 전반의 침체는 이를 개별 기업만의 문제만으로 보기 힘들게 한다.8)
이 글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스튜디오 체제로의 전환은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선택을 떠받치던 전제, 곧 여러 글로벌 플랫폼이 경쟁적으로 한국 콘텐츠를 사 줄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이 현실과 다르게 흘러갔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스튜디오 전반이 어려움에 빠졌다. 중앙그룹은 그 청사진을 가장 크게 그렸고, 예상과 달라진 환경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무너졌다. 이 글은 2016년 이후 방송사 중심 제작 체제를 스튜디오 체제로 전환한 CJ의 스튜디오드래곤, 중앙그룹의 SLL 중앙, SBS의 스튜디오 S의 궤적을 따라가며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 1) 김동인 (2020. 10. 9). [특집] 신문 대신 유튜브 보고, '성향 같아야 신뢰'. <시사인>.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978
- 2) 고경석 (2020. 5. 17). '부부의 세계',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 28%로 마무리.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2005171172090412
- 3) 라제기 (2019. 12. 18). 200억, 300억… 요즘 충무로엔 M&A 돈 바람.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1912171643038751
- 4) 김종성 (2021. 6. 24). 제이콘텐트리, 국내 제작사 3개 추가 인수.. 콘텐츠 역량 강화. <아이뉴스24>. https://www.inews24.com/view/1379045
- 5) 김슬기 (2022. 3. 21). 상장 약속한 JTBC 스튜디오, 남은 숙제는. <더벨>. https://www.thebell.co.kr/front/newsview.asp?key=202203211421149440106185
- 6) 정용인 (2026. 9. 21). '워크아웃' 중앙일보 인수전에 삼프로TV 등 6곳 참전. <주간경향>.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9212209001
- 7) 이영호·신미진 (2026. 9. 24). JTBC 매각 주관사에 한영… 인가전 M&A 본격화.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article/20094488
- 8) 조영신 (2026). 중앙그룹 사태가 드러낸 K-미디어 산업의 역설 뜨는 K-콘텐츠, 무너지는 K-미디어—방송 산업의 전면적 재설계 필요. 신문과방송(9월), 669, 15–18.
2. 너도나도 스튜디오: 설립 붐의 논리
2-1. 스튜디오 체제의 경쟁적 구축
스튜디오 시스템은 본래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배급-상영이 수직적으로 통합된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9) 오늘날에는 정규화된 스튜디오 조직이 다수의 제작 주체를 묶어 기획, 제작 관리, 유통을 총괄하는 체계를 뜻한다. 한국형 스튜디오의 원형은 스튜디오드래곤이다. CJ E&M의 드라마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된 스튜디오드래곤은 독립 제작사들을 인수해 이들을 산하에 두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창작은 작가와 감독 중심의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이끌고, 기획과 IP 확보, 여러 채널과의 유통 협상은 스튜디오가 담당하는 구조다.10)
CJ가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코로나 국면에서 OTT가 본격적으로 성장하자 다른 그룹들도 그 뒤를 따라 연달아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했다. 중앙그룹은 2019년부터 제작사들을 사모으기 시작하며 대형 스튜디오로서의 발걸음을 시작했고, SBS는 2020년 드라마본부 인력 대다수를 자회사 더스토리웍스로 전적시킨 뒤 2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거쳐 스튜디오 S를 출범시켰다. 스튜디오 S는 모회사 SBS에 연간 15편을 공급하고 외부 OTT 물량까지 합쳐 한 해 20~30편을 제작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11) OTT의 성장이 이어지자 방송사 외 기업에서도 스튜디오 설립이 이어졌다. 통신사인 KT는 2021년 1월 그룹 내 미디어콘텐츠 역량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로 KT 스튜디오지니를 설립했고, 웹소설‧웹툰 자회사 스토리위즈가 발굴한 원천 IP를 영상 콘텐츠로 만드는 구조를 짰다.12) 플랫폼 기업 카카오는 같은 해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을 합병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출범시키며, 웹툰‧웹소설 원천 IP에서 영상 기획‧제작, 글로벌 플랫폼까지 아우르는 밸류 체인을 내세웠다.13) 방송사는 내부 제작 역량을 외부로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웹툰 등의 IP를 보유한 기업은 원천 IP를 영상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스튜디오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 9) Hanssen, F. A. (2010). Vertical integration during the Hollywood studio era. The Journal of Law & Economics, 53(3), 519-543.
- 10) 이성민 (2022). OTT로 인한 콘텐츠 제작유통 시스템의 변화: 스튜디오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 11) 김지예 (2020. 3. 30). SBS 드라마 스튜디오 출범… 블록버스터 제작 총력.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life/pop-culture/2020/03/30/20200330500196
- 12) 조성흠 (2021. 1. 28). KT 스튜디오지니 출범… 연간 10~20개 대형 시리즈 제작.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10127177300017
- 13) 오대석·강우석 (2021. 1. 25). '콘텐츠 공룡' 카카오엔터 탄생… 기업가치 최대 10조.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tock/9723331
중앙그룹은 CJ와 SBS처럼 방송사 JTBC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튜디오 구축의 경로는 이들과 달랐다. CJ와 SBS가 채널을 운영하는 회사 안의 드라마 제작 조직을 떼어냈다면, 중앙그룹의 제작 역량은 애초에 채널 밖에 있었다. 2007년 설립된 중앙일보 계열 외주 제작사 '드라마하우스'는 JTBC 개국 전부터 지상파에 드라마를 납품해 왔다. 2013~2014년 두 차례 합병으로 드라마하우스는 유통까지 통합된 JTBC 콘텐트허브 체제로 흡수되어 제이콘텐트리(現 콘텐트리중앙) 자회사로 편입됐다. 다만 JTBC 콘텐트허브는 JTBC 등 채널의 콘텐츠를 대행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구조였고, 드라마 투자와 IP는 모회사와 JTBC가 나눠 쥐고 있었다.14) 이 회사가 2020년 2월 JTBC 스튜디오로 간판을 바꾸며 기획개발부터 제작·투자·유통에 이르기까지 한 회사 안에 갖춘 '완성형 스튜디오'를 표방했다.15) 이후 JTBC 스튜디오는 2021년 스튜디오룰루랄라중앙을 거쳐 2022년 SLL 중앙으로 이름을 바꾸며 규모를 계속해서 확대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SLL 중앙은 15개의 레이블 제작사와 200여 명의 크리에이터를 보유했다고 밝혔고, 3년간 3조 원 투자 계획을 밝히며, 2024년까지 매출 2조 원을 기록하겠다는 장밋빛 미래를 공표했다.16) 중앙그룹의 SLL은 방송국인 JTBC 설립 이전부터 지상파에 드라마를 납품하던 외주 제작사가 점점 외형을 키우며 대형 스튜디오로서 성장해갔다.
| 연도 | 주요 사건 |
|---|---|
| 2015 | • 방송법 개정, 특수관계자 제작 프로그램 편성 비율 제한 폐지 (6월 공포, 2016년 3월 시행) |
| 2016 | • CJ E&M 드라마사업본부 물적분할, 스튜디오드래곤 설립(5월) |
| 2017 | • 스튜디오드래곤 코스닥 상장(11월) |
| 2019 | • 제이콘텐트리, 필름몬스터 인수(4월)를 시작으로 제작사 인수 본격화 |
| 2020 | • SBS 드라마 제작 기능 이전, 스튜디오S 출범(4월) |
| 2021 | • KT 스튜디오지니 출범(1월) • 카카오페이지·카카오M 합병으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출범(3월) • JTBC 스튜디오, 국내외 제작사 6곳 인수 • JTBC 스튜디오, '스튜디오룰루랄라중앙'으로 사명 변경(12월) |
| 2022 | • 스튜디오룰루랄라중앙, 'SLL 중앙'으로 사명 변경(3월) • CJ ENM, 'CJ ENM 스튜디오스' 출범(4월) |
| 2023 | • SBS 예능 스튜디오 '스튜디오 프리즘' 출범(12월) |
| 2024 | • MBC '모스트 267' 출범(6월) • SBS콘텐츠허브, 스튜디오S 흡수합병 후 사명 변경, 통합 스튜디오S 출범(7월) |
- 14) 제이콘텐트리 (2019). 사업보고서(2018 사업연도).
- 15) SLL (2020. 2. 26.). JTBC 콘텐트허브, 'JTBC 스튜디오'로 변경! 국내 시장 넘어 글로벌 체제 도약 [보도자료] https://www.sll.co.kr/newsroom/news/8
- 16) 박동선 (2022. 4. 19). SLL, "글로벌 레이블 구조+3조원 투자 더해 신 콘텐츠 비즈 완성할 것"(간담회 종합). <전자신문>. https://www.etnews.com/20220419000252
2-2. 스튜디오 체제 구축과 장밋빛 전망
2016년 스튜디오드래곤 설립 이후 불과 몇 년 사이 중앙그룹, SBS와 같은 방송 기반 사업자뿐 아니라 통신사와 웹툰 플랫폼 기업까지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콘텐츠 제작 시장에 대대적인 구조개편이 나타났다. 이런 동시다발적인 설립 붐은 개별 기업의 판단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산업 전체가 공유한 기대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가장 큰 동력은 글로벌 OTT의 확산에 따른 대형 구매자에 대한 기대였다. 한한령으로 중국 판로가 막히자 업계에서는 당시 글로벌 무대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넷플릭스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넷플릭스는 2016~2020년 한국 콘텐츠에 약 7,700억 원을 투자했고, 2021년 한 해에만 5,5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지상파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콘텐츠 구매액 전체(5,785억 원)와 맞먹는 규모였다.17) 2021년 11월에는 애플TV+와 디즈니+가 잇달아 상륙했다. 비슷한 시점에 HBO Max는 한국에서 채용을 개시하였으며, 아마존은 SK텔레콤 등과 협업을 논의하며 곧 국내에 진출할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거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앞다투어 한국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움직임들이 나타나며 대형 구매자들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더군다나 글로벌 OTT는 제작비 전액을 선지급하고 10~20%의 이윤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했다. 흥행 위험을 구매자가 지는 방식이다. 이런 구매자가 여럿 경쟁한다면 제작자의 협상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채널 편성표를 채우는 인 하우스 조직으로는 여러 플랫폼과 거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독립 법인인 스튜디오가 필요했다.
선두주자였던 스튜디오드래곤이 자본시장의 기대를 한껏 받은 것 또한 경쟁사들을 뒤따르게 한 요인이었다. 2018년 6월 스튜디오드래곤의 시가총액은 2조 9천억 원으로 당시 상장 SBS 계열 3개 상장사의 시가총액 합계인 약 1조 원을 크게 웃돌았다.18) JTBC와 SBS가 분사와 투자 유치를 서두른 배경에도 이 성공 모델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당시 미디어 사업자로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대형 스튜디오화는 피할 수 없는 길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스튜디오로 전환한 각 기업들은 제작 시장의 팽창에 대해 크게 낙관을 하였고 이러한 내용은 사업보고서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SLL 중앙은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 글로벌 OTT의 급격한 성장으로 콘텐츠 사업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19) 스튜디오드래곤은 글로벌 드라마 시장의 콘텐츠 투자 규모가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20) SBS는 2023년 사업보고서에서 국내 드라마를 유치하려는 해외 미디어사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해외 판매가가 지속 상승하고 있으며, 드라마 제작 산업은 향후에도 지속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술하였다.21)
이처럼 코로나 전후 발생한 미디어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이런 장밋빛 전망은 K콘텐츠의 글로벌 도약의 흐름을 타고 확신으로 굳어졌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그 방향을 떠받치는 전제를 의심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이 선택들은 여러 플랫폼이 경쟁적으로 한국 콘텐츠를 사 줄 것이라는 하나의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전망 자체는 모두가 같았던 만큼, 이후 결과를 가른 것은 이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각자가 어떻게 움직였느냐였다.
- 17) 김상임·이영주 (2021). OTT 플랫폼 환경에서의 국내 콘텐츠 기업의 경영전략: 동적 역량 접근을 중심으로.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38(3), 5-45.
- 18) 조영신 (2018). <스튜디오 드래곤>, 한국 영상 제작의 새로운 신호탄을 쏘다. 방송 트렌드&인사이트. Vol.14(2018년 1호). https://www.kocca.kr/trend/vol14/sub/s41.html
- 19) 에스엘엘중앙 (2022). 사업보고서(2021 사업연도).
- 20) 스튜디오드래곤 (2022). 사업보고서(2021 사업연도).
- 21) SBS (2024). 사업보고서(2023 사업연도).
3. 빗나간 예측, 환경의 변화
미디어 사업자들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커다란 꿈에 부풀었지만,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적극적으로 규모를 확대하던 스튜디오들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3-1. 넷플릭스 1강 체제 고착
코로나 국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OTT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일상 회복, 사업자 간 경쟁 심화가 겹치며 성장 둔화를 나타냈다. 넷플릭스 가입자는 2022년 1·2분기 연속 감소해 11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22) OTT 사업자들은 광고형 요금제 도입, 계정 공유 유료화 등 성장 중심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경영 기조를 수정했다. 한국 직진출을 준비하던 HBO 맥스는 채용까지 진행했다가 계획을 접고 국내 OTT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선회했고, 아마존 프라임비디오는 SK텔레콤과의 제휴를 통한 정식 출시가 거론됐으나 끝내 현지화 서비스를 내놓지 않았다. 파라마운트+는 2022년 티빙 내 브랜드관 형태로 들어왔지만 2년 만인 2024년 6월 철수했다.23) 넷플릭스가 2023년 4년간 25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며 한국 콘텐츠 투자를 확대24)한 반면, 티빙·웨이브 등 국내 OTT는 누적 적자로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을 줄이거나 사실상 중단했다. 공격적 투자가 예상됐던 디즈니+는 국내에서 유의미한 가입자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오리지널 드라마를 크게 늘리지 못하고 있고, 애플 TV+는 한국 제작 오리지널이 출시작 '닥터 브레인' 한 편에 그쳤다.
- 22) 이승엽 (2023). 코로나19 이후 넷플릭스의 요금정책 변경 관련 동향. <미디어 이슈&트렌드>, 통권 57호. https://www.kca.kr/Media_Issue_Trend/vol57/KCA57_21_global.html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구매 시장은 넷플릭스 1강에 디즈니+가 간헐적으로 가세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구매자가 사실상 하나인 시장에서 판매자의 협상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제작사는 IP를 플랫폼에 넘기고 제작 용역 대가만 받는 구조에 갇혔고, 작품이 세계적으로 흥행해도 리메이크, 스핀오프, 상품화 같은 2차 수익에서 배제됐다. 사실상 단순 제작 하청 업체화 된 것이다. 넷플릭스마저 한국의 치솟는 출연료와 인건비에 부담을 느껴 절반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는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기 시작했다.25)
- 23) 윤정민 (2024.5.16.). 내달 중순부터 티빙서 파라마운트 콘텐츠 못 본다. <뉴시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0516_0002736128
- 24) 유정인 (2023.4.25.). 윤 대통령 만난 넷플릭스 CEO "한국에 4년간 25억달러 투자".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304250651001
- 25) 유진희 (2024). 제작비 폭등에 따른 국내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개선방안. <미디어 이슈 & 트렌드> 통권 63호. https://www.kca.kr/Media_Issue_Trend/vol63/KCA63_23_trend.html
3-2. 제작비 인플레이션
구매자는 줄었는데 비용은 폭등했다. 대작 K-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킹덤>(2019) 20억 원에서 <수리남>(2022) 58.3억 원으로 급증했다.26) 급기야 <오징어 게임 2>와 <오징어 게임 3>에 이르러서는 총제작비 1,000억 원27), 회당 약 77억 원까지 기록했다. 넷플릭스는 제작비 전액에 초기 기준 10~20%의 마진을 얹어주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사들였다. 마진이 제작비에 비례하는 구조에서 단가 상승은 제작사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마진이 제작비에 비례하므로 제작비가 오를수록 제작사 몫도 커진다. 넷플릭스도 한국 드라마 제작비가 미국보다 저렴해 제작비 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배우가 출연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품질을 갖추느냐였다. 제작 시장이 글로벌화 되면서 프리미엄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됐고, 그 과정에서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뛰었다. 톱스타의 회당 출연료는 2억~3억 원을 웃돌고, <오징어 게임 2>의 이정재는 회당 10억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숙 같은 톱 작가의 원고료도 회당 1억 원을 넘는다. 넷플릭스는 출연료뿐 아니라 색보정(DI), 컴퓨터 그래픽(CG), 음향, 자막 등 후반 작업 비용까지 끌어올렸다.
- 26) 김승주 (2025). OTT 시장 확대와 콘텐츠 제작시장 구조변화, 한국개발연구원.
- 27) 박재령 (2025.1.2.). '오징어게임 2' 수익 추산은 불가능? 1조 5000억 숫자에 갑론을박,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488
지불 능력 격차도 컸다. 글로벌 OTT 사업자가 회당 수십억 원을 투자하는 동안, 티빙·웨이브가 투자한 오리지널은 회당 최대 12억~13억 원에 그쳤다.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2013년 지상파 3사의 드라마 회당 평균 제작비가 2억 내외였던 데 비해28), 지금은 업계 추산으로도 회당 최소 15억 원, 주요 작품은 20억~30억 원대에 이른다. 결국, 시장 가격은 가장 많이 낼 수 있는 구매자가 정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시청자는 더 좋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위주로 시청하고, 그 결과 넷플릭스 1강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 28) 김민정 (2013. 4, 30). 드라마 장르별 제작비 천차만별… 회당 1억서 6억까지. <이투데이>. https://www.etoday.co.kr/news/view/725710
문제는 넷플릭스에 팔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출연료와 후반작업 단가는 넷플릭스를 기준으로 올라갔지만, 국내 방송사와 OTT가 치를 수 있는 방영권료는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넷플릭스와 계약하지 못한 작품은 국내 판매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려워졌고, 그 차액은 고스란히 제작사와 스튜디오의 몫으로 남았다. 제작비 인플레이션은 넷플릭스와 거래하는 소수의 작품에는 이익을 키웠지만, 나머지 작품에는 손실 위험을 키운 셈이다.
3-3. 국내 영상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급격한 위축
글로벌 OTT가 들어오지 못한 자리를 국내 사업자들이 대체했으면 좋았겠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작비, 높아진 이용자들의 기대치에 국내 방송사와 OTT가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이들은 대체 플랫폼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국내 영상 콘텐츠 제작과 유통의 핵심축으로 기능했던 방송 산업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방송 광고 매출은 2021년 3조 1,486억 원에서 2025년 2조 134억 원으로 불과 4년 만에 36%가 줄었다. 지상파는 2025년 1,174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내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방송사업매출도 18조 6,495억 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비싼 방영권료에 비해 수익을 담보하기 어려워지자 방송사들은 드라마 편성 자체를 없앴다. 2019년 SBS가 월화드라마를 폐지했고, 2023년에는 지상파 3사와 tvN이 일제히 수목드라마 편성구간을 폐지했다.29) 축소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2023년과 2025년을 비교하면 SBS의 목요일 드라마 시간대가 사라졌고, TV조선·채널A·MBN은 2025년 드라마 슬롯을 아예 운영하지 않았으며, JTBC와 ENA는 수목드라마를 없앴다. 2025년 6월 기준 일일극을 빼고 평일(월화·수목) 드라마를 편성한 곳은 KBS2, tvN, ENA 세 곳뿐이었다. tvN이 2026년 2월 3년 만에 수목드라마를 되살렸지만, 첫 작품은 1%대 시청률에 머물렀다. 어쩌다가 큰 히트작이 나와도 방송사의 수익성은 높아진 제작비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 29) 유진희 (2024). 제작비 폭등에 따른 국내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개선방안. <미디어 이슈 & 트렌드> 통권 63호. https://www.kca.kr/Media_Issue_Trend/vol63/KCA63_23_trend.html
토종 OTT도 물러섰다. 티빙은 스포츠로 투자 방향을 틀었고, 웨이브는 2023년 오리지널 드라마를 2편 제작한 데 이어 2024년에는 한 편도 만들지 않았다. 2025년 몇 편을 내놓기도 했지만, 2026년 2월 공개작을 끝으로 그해 오리지널 드라마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2023년 123편, 2024년 100여 편으로 줄었고, 2025년에는 80여 편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30)
- 30) 유진희 (2024). 제작비 폭등에 따른 국내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개선방안. <미디어 이슈 & 트렌드> 통권 63호. https://www.kca.kr/Media_Issue_Trend/vol63/KCA63_23_trend.html
4. 같은 바람, 다른 대응: 세 그룹의 전략과 재무 비교
CJ ENM과 스튜디오 드래곤, SBS와 스튜디오S, JTBC와 SLL중앙 세 그룹은 같은 장밋빛 전망에서 출발했지만, 코로나가 종료되던 시점인 2022년 이후 환경이 바뀌자 대응이 갈렸다. 이하에서는 각 그룹이 변화한 환경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겠다.
4-1.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 큰 베팅, 빠른 수습
CJ도 무리한 투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CJ ENM은 2022년 1월 할리우드 제작사 엔데버 콘텐트(Endeavor Content)(現 피프스시즌(Fifth Season))의 지분 80%를 약 9,200억 원에 인수했고, 이중 대부분인 9,000억 원을 차입으로 조달했다.31) 인수 직후 엔데버 콘텐트는 미국 작가‧배우 노조의 동반 파업까지 겹치며 적자를 이어갔다. CJ ENM은 2022년 1,768억 원, 2023년 3,968억 원의 순손실을 냈고, 2023년에는 연간 영업이익도 -146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32)
- 31) 김선호 (2021.11.19.). '1조 빅딜' CJ ENM, '단기차입+자산매각' 실탄조달, <더벨> https://www.thebell.co.kr/front/newsview.asp?key=202111191544590800104921
- 32) CJ ENM (2024). 사업보고서(2023 사업연도).
CJ ENM은 이러한 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나자 긴축적 조치들을 단행했다. CJ ENM은 2023년 12월 일본 토호(Toho)를 대상으로 피프스시즌의 2억 2,500만 달러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해 지분 25%를 넘겼고, 인수 당시와 비슷한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았다.33) 2024년에는 10년간 보유하던 넷마블 지분도 처분했다. 차입으로 벌인 해외 베팅의 손실을 외부 지분 투자와 자산 매각으로 메운 것이다.
- 33) 이상은 (2023.12.13.). 美 피프스시즌 투자유치로 한 숨 돌린 CJ ENM… 이제 시선은 그룹 정기인사로, <인베스트 조선> https://www.investchosun.com/site/data/html_dir/2023/12/12/2023121280190.html
스튜디오드래곤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영업이익을 냈고, 부채비율은 2021년과 2025년 모두 29%로 차입에 기대지 않는 구조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시장이 꺾이자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매출은 2023년 7,531억 원에서 2024년 5,501억 원으로 27% 줄었지만 적자는 내지 않았다. 매출이 4분의 1 넘게 줄어드는 동안 흑자를 유지했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절감 노력 등이 수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스튜디오드래곤도 충격 을 피하지는 못했다. 영업이익률은 2021년 10.8%에서 2025년 5.7%로 반 토막이 났고, 2025년에는 자회사 영업권 손상으로 순이익이 69% 줄었다.34) 그러나 이익이 줄어들었지만 부채비율은 29%라는 낮은 수치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4-2. SBS와 스튜디오 S: 작은 스튜디오에 확실한 구매자를
SBS의 스튜디오는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게 설계되었다. 스튜디오 S는 2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출범했고, 2023년 말 기준 자산 1,390억 원, 부채 334억 원, 매출 2,200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대형 인수합병 대신 모회사 SBS에 드라마를 공급하는 제작 조직의 성격을 유지한 것이다. 환경이 바뀌자 SBS는 확장보다 구조 정비와 판로 확보를 택했다. 2024년 7월 유통을 맡던 SBS 콘텐츠허브가 제작 조직이었던 스튜디오 S를 흡수합병하면서 사명도 스튜디오 S로 이어받아, 드라마의 제작과 유통을 한 회사로 묶었다. 합병 이후에도 통합 스튜디오 S의 2025년 부채는 1,059억 원, 자본은 2,878억 원으로 부채비율 37%에 그쳤다.35)
SBS도 광고 침체를 피하지는 못했다. 연결 영업이익은 2022년 1,856억 원에서 2024년 -192억 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2025년 182억 원으로 흑자를 회복했고, 부채비율은 2021년 103%에서 2025년 57%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익잉여금도 같은 기간 5,023억 원에서 7,045억 원으로 늘었다.36) 이는 넷플릭스와의 파격적 계약의 효과였다고 할 수 있다. SBS는 2024년 12월 넷플릭스와 6년짜리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신작 드라마 일부를 국내외에, 예능·교양과 구작 라이브러리를 국내에 공급하기로 했다. 어려워지는 경영환경을 타개할 방법으로 새로운 구매자와의 통 큰 계약을 선택한 것이다. 증권가는 SBS가 넷플릭스를 통해 얻는 이익에 대해 계약 규모를 보수적으로 잡아도 6년간 약 3,000억 원으로 추정했다.37) 구매자가 사실상 넷플릭스 하나로 수렴한 시장에서, 그 구매자와 장기 공급 계약을 먼저 확보한 것이다. 동시에 SBS는 작품 IP를 쥔 채 방영권만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2026년 <김부장>은 SBS가 IP를 보유한 채 넷플릭스에 방영권을 판 사례에 해당한다.
이처럼 SBS는 악화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무리하지 않는 구조개편과 파격적인 결정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마련하는 등 생존을 위한 사업적‧재무적 노력을 병행했다.
- 34) 스튜디오드래곤 (2024, 2026). 사업보고서(2023·2025 사업연도).
- 35) SBS (2024, 2026). 사업보고서(2023·2025 사업연도).
- 36) SBS (2024, 2026). 앞의 자료.
- 37) 박형수 (2024.12.26.).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SBS… 기관의 이유있는 폭풍 순매수, <아시아 경제> https://view.asiae.co.kr/article/2024122416124591034
4-3. 중앙그룹: 환경이 바뀐 뒤에도 멈추지 않은 확장
중앙그룹의 확장은 출발부터 차입에 기대고 있었다. SLL 중앙의 모기업 콘텐트리중앙의 연결 자산은 2019년 1조 1,616억 원에서 2021년 2조 2,456억 원으로 2년 만에 두 배가 됐다. 같은 기간 영업권은 856억 원에서 2,398억 원으로, 부채는 7,411억 원에서 1조 5,478억 원으로 불어났다.38)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지만, 그 비용을 대부분 빚으로 치른 셈이다. 문제는 환경이 바뀐 뒤에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는 데 있다.
넷플릭스가 11년 만의 가입자 감소를 발표한 2022년 4월, SLL 중앙은 3년간 3조 원을 투자해 2024년 매출 2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공표했다.39) SLL 중앙의 연결 영업손익은 2021년 150억 원 흑자에서 2022년 -602억 원, 2023년 -516억 원, 2024년 -312억 원으로 3년 연속 적자였다. 그 사이 부채는 4,946억 원에서 8,038억 원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공격적으로 인수했던 제작사와 미국 법인의 영업권 350억 원을 손상처리했다. 그럼에도 SLL 중앙은 2025년 3월 공시한 사업보고서까지 성장세가 "향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다.40) 이런 낙관적 문구는 다른 회사의 보고서에도 있었다.
그룹은 SLL 중앙을 핵심 계열사로 키우는 데 자원을 집중했다. 그 결과 SLL 중앙은 2025년 187억 원 흑자로 돌아섰지만, 그 확장의 무게는 그룹의 출발점인 JTBC가 떠안았다. JTBC는 SLL 중앙이 높은 제작비를 들여 만든 프로그램을 방영권료를 내고 사들이는 구매자였다. 2025년 JTBC가 SLL 중앙과 스튜디오아예중앙에 지급한 방영권료 등은 1,462억 원으로, 같은 해 방송 광고 매출 1,891억 원의 4분의 3이 넘었다. 그 광고 매출마저 2021년보다 21% 줄어든 상황이었다. JTBC는 2022년에는 <아는 형님> 등 279편의 IP마저 433억 원에 SLL 중앙으로 넘겼다. 흥행의 과실인 IP와 부가 수익은 대부분 SLL 중앙의 몫이 되었다. 2025년 SLL 중앙의 흑자전환은 이런 구조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JTBC는 훌륭한 방송사였지만 재무적으로는 상당히 취약한 회사였다. JTBC의 연결 영업손익은 2019년부터 2025년까지 7년 연속 마이너스였고, 2023년에는 적자 폭이 707억 원까지 커졌다. 그런데도 중앙그룹은 2026~2032년 동·하계 올림픽과 2026·2030년 월드컵 중계권을 지상파 공동 구매(코리아풀)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확보했고, 그 비용은 약 5억 달러(약 7,000억 원)로 알려졌다. 재판매 협상이 결렬되면서 2026년 2월 동계올림픽은 단독 중계로 비용을 떠안았고, 1억 2,500만 달러에 산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은 지상파 가운데 KBS에만 140억 원에 되팔았다.41) 2024년에는 SLL과 별도로 JTBC 산하 제작 자회사 스튜디오아예중앙에 300억 원을 추가 출자했지만, 이 회사는 그해 88억 원, 이듬해인 2025년에는 346억 원의 순 손실을 냈다.42)

실적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중앙그룹의 확장 전략과 낙관은 수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확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단기·고금리 자금이었다. JTBC의 자본총계는 2025년 말 190억 원으로 자본금 5,751억 원의 3%에 불과했다. 부채비율 2,621%에 달하는 높은 수치다. 그나마 남은 자본도 2023년 385억 원에서 2025년 1,544억 원으로 늘린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이 떠받친 것이었다. 2025년 한 해에만 단기사채를 2,809억 원어치 발행했고, 기업어음 금리는 6.9%, 대출채권 유동화 금리는 7.0%였다. 일부 차입에는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즉시 상환해야 하는 기한이익상실 약정까지 붙어 있었다. 이 시점 JTBC의 결손금은 7,033억 원에 달했다. 주주들이 출자한 자본금은 5,751억 원인데, 이미 이걸 다 소진하고 빚으로 돌려막기를 하면서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43)
그룹이 SLL 중앙을 국내 최고의 스튜디오이자 핵심 계열사로 키우는 동안 JTBC의 경영은 이미 한계지점까지 와 있었다. 이러한 위기가 JTBC에 머물지 않은 것은 계열사들 서로가 빚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와 중앙홀딩스는 JTBC 영구채 1,500억 원에 자금보충·채무인수 약정을 제공했고, 중앙홀딩스는 올림픽 중계권 구매에도 지급보증을 섰다.44) 이 보증들은 모두 시장이 꺾인 뒤에 맺어졌다. 첫 보증은 JTBC가 707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2023년에 시작됐고, 1,500억 원 가운데 1,100억 원은 채무불이행 직전 9개월 동안 집중됐다. 마지막 보증은 부도 25일 전이었다. 반대로 SLL 중앙은 JTBC에서 받을 제작비 매출채권을 담보로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리고 있었다.45) 중앙그룹의 계열사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가 자금보충 및 채무인수 약정, 지급보증과 같은 연대보증 성격의 계약들로 서로가 강력히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중앙 그룹은 경영 기조를 수정하지 않고 그룹 계열사 간 강력한 연대보증까지 강화해나가며 장밋빛 미래만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그룹은 JTBC를 살리기 위해 사슬을 더 단단히 묶었고, 그 사슬이 결국 그룹 전체를 한꺼번에 끌어내렸다. 빚으로 쌓아올린 희망은 가장 취약한 지점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리고 만 것이다.
| 사업자 | 영업이익 | 부채비율 | |||
|---|---|---|---|---|---|
| 2021 | 2025 | 2021~2025 누적 | 2021 | 2025 | |
| CJ ENM | 2,969 | 1,329 | +6,570 | 89% | 152% |
| 스튜디오드래곤 | 526 | 304 | +2,405 | 29% | 29% |
| SBS | 1,723 | 182 | +4,152 | 103% | 57% |
| 스튜디오 S* | 102 | 79 | +401 | 30% | 37% |
| JTBC | -192 | -287 | -1,614 | 1,585% | 2,621% |
| SLL 중앙 | 150 | 187 | -1,093 | 80% | 155% |
| 콘텐트리중앙 | -574 | 88 | -2,356 | 222% | 318% |
출처 각 사 사업보고서를 바탕으로 필자 계산

- 38) 콘텐트리중앙 (2022). 사업보고서(2021 사업연도).
- 39) 김슬기 (2022.4.19.). '새출발' SLL, 기업가치 극대화 노린 '매출 2조' 목표, <더벨> https://www.thebell.co.kr/front/newsview.asp?key=202204191652207880101738
- 40) 에스엘엘중앙 (2024, 2025). 사업보고서(2023·2024 사업연도).
- 41) 신다은 (2026.6.15.). JTBC, 중계권 독점 '승자의 저주'… '206억 채무 불이행'에 "비상경영",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263484.html
- 42) 제이티비씨 (2022, 2024, 2026). 사업보고서(2021·2023·2025 사업연도).
- 43) 제이티비씨 (2026a). 사업보고서(2025 사업연도).
- 44) 제이티비씨 (2026b). 반기보고서(2026년 반기).
- 45) 에스엘엘중앙 (2026). 반기보고서(2026년 반기).
5. 결론
스튜디오 체제로의 전환은 당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한령으로 중국 판로가 막히고 글로벌 OTT가 앞다퉈 한국 시장을 넘보던 시기, 채널 편성표에 묶인 인 하우스 제작 조직으로는 여러 구매자와 거래할 수 없었다. 방송사는 물론 통신사와 웹툰 플랫폼까지 스튜디오를 세운 것은 당시 환경이 요구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을 떠받친 전제는 현실과 다르게 흘러갔다. 여러 글로벌 플랫폼이 경쟁적으로 한국 콘텐츠를 사 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시장은 넷플릭스 1강 체제로 굳어졌다. 제작비는 치솟았고, 국내 방송사와 OTT는 드라마 편성과 오리지널 제작을 줄였다. 스튜디오들이 일제히 어려움에 빠진 것은 이 때문이다.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그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해 온 국내 미디어 기업들의 사정은 정반대다. 이에 업계는 조직을 줄이고, 비용을 덜어내고, 글로벌 플랫폼과 손을 잡는 등 살아남기 위한 길을 저마다 찾고 있다.
중앙그룹 사태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일어났다. 국내 시장이 글로벌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원대한 비전을 품고 있던 중앙그룹은 급격히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가입자 감소를 발표하던 무렵 3조 원 투자 계획을 내걸었고, 적자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확장 전략과 낙관을 거두지 않았다. 다른 기업들은 전제가 흔들리는 신호가 보였을 때 베팅을 줄이고, 몸집보다 재무 건전성을 우선하고, 확실한 판로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중앙그룹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빗나간 전망을 붙든 채 차입과 보증으로 확장을 이어간 중앙그룹은 작은 균열 하나에 무너졌다. 이 사태는 미디어 산업의 침체라는 공통된 토대 위에서 발생했지만, 그룹 전체가 이렇게 순식간에 붕괴된 것은 중앙그룹의 지나친 낙관적 경영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디어 산업은 지금 상당히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OTT가 촉발한 글로벌 유통 및 제작 시장의 통합은 국내를 토대로 사업해 온 모든 방송·영상 사업자에게서 낙관적인 미래를 그릴 여유를 앗아갔다. 중앙그룹의 과감한 투자는 환경이 받쳐주었다면 K-콘텐츠의 새로운 도약을 이끈 결단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영은 바라는 환경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위에서 이뤄진다. 환경이 바뀐 순간 비전은 전략이기를 멈추고 희망이 된다. 그리고 희망은 빚을 갚아주지 않는다. 중앙그룹의 몰락은 그 평범한 진실을 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증명했다.
이 위기는 중앙그룹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바람은 지금도 모든 미디어 기업을 향해 불고 있다. 그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고 있어 이를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견디기는 어렵기에, 산업의 구조와 제도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다만 그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업이 놓아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는 용기만큼이나, 그것이 빗나갔음을 인정하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