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이 해제되어도 과거의 영광은 없다
이는 넷플릭스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한령이 해제되면 한국 영상 시장이 새롭게 웅비할 수 있을까?
한한령 기간 동안 중국 영상 시장은 괄목할 정도로 성장을 했다. 따라서 한한령이 해제되더라도 과거 한한령 이전의 영광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OTT들은 중국 본토와 동남아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수급 자체를 현재보다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넷플릭스를 견제할 수 있는 옵션이 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 번의 희망 고문이 시작되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한·중의 문화 교류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그래서 이른바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가 그것이다. 이번에는 더 간절하다.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었다. 초과 수요 시장에서 초과 공급 시장으로 바뀌었다. 콘텐츠 제작 시장은 극심한 구조 조정을 겪고 있다. 2022년 활황기 기준 1/5 수준으로 주가는 박살이 났다. 그나마 대형 사업자들은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영세한 사업자들은 당장 내일의 밥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수요가 커지고 있는 숏폼 드라마(Short Form Drama)를 제작하고 있긴 하지만, 성에 찰 리가 만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중 문화 교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으니, ‘또’ 속는 셈 치고 또 몇 달만 버티면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래서 희망 고문이다.
처음은 아니다. 2021년경부터 한한령이 완화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종종 있어 왔다. 2021년 12월 한국 영화 《오! 문희》가 약 6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본토 극장에서 개봉 1) 했고, 2022년 1월에는 한국 드라마 《사임당》이 망고TV Mango TV 등 중국 OTT 플랫폼에 정식 공개 2) 되기도 했었다. 3) 2022년 3월, 손예진·정해인 주연의 JTBC 드라마《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Something in the Rain)가 중국 아이 치이iQIYI에 스트리밍되기도 했었다. 2017년 이후 약 6년 만에 중국 국가광전총국(国家广播电视总局) 이 정식으로 승인한 사례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기대는 높았으나 시장의 변화는 없었다.
2023년에도 시진핑 주석이 한국 대중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뒤에 한한령 해제의 기대감이 꿈틀댔으나 실질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2024년에는 베이징 국제 영화제에 《파묘》 등 한국 영화 5편이 초청된 5) 사실을 두고 다시 한한령 해제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중국 고위 관료의 발언, 한 두 편의 한국 콘텐츠 중국 유입 그리곤 끝. 이런 식의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2025년은 다를 것이라며 희망 고문이 재점화되었다. 2024년 말 한국 국회 대표단과 시 주석의 면담에서 중국 내 한국 콘텐츠 접근을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5년 2월에는 중국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조직인 ‘중국아태합작중심’이 한국에 문화사절단을 파견할 계획을 발표 6) 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양국 간 문화 교류 재개를 위한 신호이자 한한령 해제의 전초 단계로 시장은 이해했다. 2024년 중국이 한국을 무비자 대상국으로 지정한 것 등과 맞물려서 2025년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방문할 때 한한령도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다. 사드THAAD로 인한 분쟁을 문화 교류를 억제하는 선에서 봉합했듯 이, 한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역시 문화 교류에서 실마리를 풀어보겠다는 의미다.
아직 본격적인 움직임은 없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농락당했던 경험 때문인지 시장은 쉽게 움직 이지 않고 있다. 오직 주가만 반응하고 있다. 7) 시장은 구체적인 한한령 해제의 움직임이 나와야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선 한한령이 해제된다면 한국 영상 시장이 새롭게 웅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쪽에서는 한한령만 해제되면 넷플릭스를 견제할 강력한 집단이 등장하는 것이 기에 우리의 협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중국 영상 시장이 성장해서 한국 콘텐츠의 지배력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하다. 두 이야기 모두 규모에 관한 문제이며, 정도의 문제다. 우선 한한령 이전 숫자부터 확인해 보자.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전인 2016년까지 한국 드라마·예능·K-Pop은 중국 내 주요 플랫폼들이 앞다 투어 수급하려고 했던 핵심 아이템이었다. 2016년 방송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중국 아이치이에서 누적 조회수 27억 회를 기록하며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이 드라마의 판권 구입액은 회당 23만 달러로 총금액은 37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50억 원 내외였다. 총제작비 130억 원의 40%에 근접하는 규모다. 예능 프로그램의 수익성도 좋았다. 당시 중국 방송사들이 한국 예능 포맷을 앞다투어 수입하면서 2012년 130만 달러에서 2016년 5,493만 달러로 42배 이상 급증할 정도였다. 그러나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2016년 하반기 사드 배치 문제로 두 나라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사실상 한국산 방송·영화의 신규 수입을 막았고, 《태양의 후예》 이후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방영과 영화 개봉은 전면 중단되었다.
완제품으로서 드라마와 영화의 방영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요소로서의 스타들도 자유롭지는 않았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은 중국 광고 모델로 기용되고, 인기 아이돌 그룹은 대규모 중국 투어 공연과 팬미팅을 개최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김수현과 전지현은 2014년 드라마《별에서 온 그대》 이후 다수의 중국 브랜드 광고에 출연했고, 광고 한 편당 당시로는 큰 금액인 10억 원 내외를 벌었다. 8) 빅뱅(Big Bang)이나 엑소(EXO) 같은 아이돌 그룹들은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수만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을 했다. 한한령은 이들에게도 타격을 입혔다. 중국 정부는 공연, 방송, 광고 전반에 걸쳐 한국 연예인의 출연을 꺼렸고, 이미 계약되었던 광고까지 줄줄이 중단되었다.
실제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오포(OPPO)는 2016년 배우 전지현을 신규 모델로 기용했지만, 이듬해 사드 갈등 격화로 해당 광고 집행을 아예 중단했고, 비보(Vivo) 역시 광고 모델을 한국 배우 송중기에서 중국 배우로 교체했다. 한국 가수들의 중국 콘서트와 팬미팅은 모조리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영화 홍보 차 배우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2017년~2018년 K-Pop 스타들은 중국 공연 대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의 공연이 빈번해졌다. 예외는 있었다. 2017년 11월 전지현이 베이징 지하철 역에 게시된 화장품 브랜드 광고에 등장 9) 했다. 한류 스타가 중국 내 오프라인 광고에 모 습을 비춘 드문 사례였다.
2020년에는 빅뱅의 지드래곤(G-Dragon)이 중국 음료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 한한령 발효 후 처음으로 한국 연예인이 현지 브랜드 얼굴이 된 사례 10) 였다. 마치 우리는 공식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자국 진입을 막은 적이 없다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처럼 광고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한류 스타들의 노출이 재개된 가운데, 2020년 10월에는 배우 김수현이 알리바바 그룹의 온라인 쇼핑 라이브 방송에 등장해 화장품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김수현은 이 방송을 통해 중국 소비자들에게 직접 인사하며 자신이 모델로 있는 화장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부 대형 스타는 한한령 와중에도 제한적이나 모습을 드러냈다.
이 외에도 다수의 한류 스타가 한한령 기간 웨이보 등 SNS를 통해 중국 팬과 계속 교류했다. 공식 무대에는 설 수 없어도 온라인으로는 소식을 전하고 팬들과 소통함으로써 중국 내 팬덤을 붙잡아 둔 것이다. 예컨대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Black Pink) 팬들은 음반 공동구매, 생일 축하 광고 등비공식 응원 활동을 계속했다.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은 사업주를 압박하면 공식 수입 등을 차단할 수 있었겠지만, 개개인의 소비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21년에는 중국 당국이 직접 개입해 웨이보Weibo의 일부 K-Pop 팬클럽 계정을 일시 정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한한령 이후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내 공개 활동은 거의 멈췄지만, 숨은 열기는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고 SNS를 통한 팬덤 유지는 이어져 왔다. 다만 한류 스타들의 중국 광고 출연 재개나 현지 이벤트 참석은 2020년대에 들어서야 극히 일부만 이루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7년 이후 한국의 콘텐츠 사업자들은 중국 시장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했다.
합작 사업은 물론이고 중국 플랫폼과 맺었던 공급 계약도 연기 혹은 취소되었다. 중국 자본이 참여했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2016년 이미 중국 방송 승인을 받았으나 한한령 여파로 방영이 무기한 밀렸다가, 11) 5년 넘게 지나서야 2022년 망고TV를 통해 뒤늦게 공개되었다. 이처럼 한류 콘텐츠 직수출 길이 막히자, 한국 기업들은 우회로 개척에 나섰다. 콘텐츠 포맷 판매 및 IP 라이선싱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 웹툰《뷰티풀 라이어》는 2016년 알리바바픽쳐스(Alibaba Pictures)와 영화 판권 계약을 체결 12) 했고,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역시 라이선스를 통해 중국 23개 도시 투어 공연을 올려 전석 매진을 기록 13) 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약 25편의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중국 버전으로 리메이크Re-make 되었고, 14) 인기 예능 프로그램도 라이선스 형태로 현지화 되었다. 2018년 텐센트가 엠넷Mnet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포맷을 구매한 뒤, 중국판 《창조 101》를 방영한 것 15) 은 대표적인 포맷 수출 사례다.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 제작진과 중국 자본이 공동 투자해 작품을 만드는 합작 제작 시도도 있었다.
한국인이 직접 앞에 나서지 않고 중국 배우·스태프로 제작해 중국 작품으로 분류되도록 유도하는 등우회전략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합작물도 엄격한 심의를 통과해야 했기에 성과를 내진 못했다. 결국 한류 기업들은 중국 시장 직접 진출이 어려워지자 대체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자들은 중국 대신 일본, 동남아 등지로 투어 일정을 늘렸고, 드라마 제작사들은 동남아 OTT 플랫폼 이나 넷플릭스와 거래를 확대하면서 중국 시장의 공백을 메웠다. 다만 웨이보 등을 통해 현지 온라인 팬덤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했다.
중국 팬들도 비공식 경로를 통해서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려고 했다. 일부는 VPN을 활용했고, 누구는 어둠의 경로를 이용했다. 중국 본토 대신 홍콩·마카오 등지에서 콘서트를 열어 중국인 팬들을 우회적으로 끌어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한한령 기간 한국 콘텐츠 업계는 직접적인 중국 수익은 감소했지만, 포맷 수출, IP 협업, 제3 국 경유 마케팅 등으로 제한적이나마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면서 향후 상황 변화에 대비해 왔었다. 불씨는 남겨둔 셈이다.
그러나 한한령이 풀리더라도 신중해야 한다. 설사 한한령이 완화되더라도 그것이 영구적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은 자국 내 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경계하며 문화 안보를 내세워 수입을 제한해 오곤 했었다. 17) 최근엔 미국의 관세 전쟁에 대한 보복으로 할리우드 제한령을 선언한 것도 이 맥락이 다. 18) 따라서 한한령이 완화되더라도 언제 다시 동일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 오히려 선별 수용이 상시화 된다고 가정하고 그림을 그리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다.
이런 기본적인 가정을 하고 나더라도,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중국 본토 시장과 아시아 시장을 분리 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국 본토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필요성과 아시아 시장에서의 한국 콘텐츠의 필요성은 얼핏 한 몸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일한 사업 자이기 때문에 수급의 구조가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 방영권을 결합해서 요구할 가능성이 높지만, 두 시장 내 한국 콘텐츠의 필요성에 따라서 수급 비용, 우리 입장에서는 콘텐츠 방영권 가격이 현격히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현재 중국 영상물의 수준이다. 어느 나라이든 자국 콘텐츠의 품질이 일정 정도 이상이라면 자국 콘텐츠를 우선 선호한다. 자신들과 얼굴 모양새도, 언어도, 그리고 문화적 배경도 동일한 자국 콘텐츠를 기피하는 나라는 없다. 자국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콘텐츠에 한해서 외국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그 역시 문화적 할인을 감안해도 자국 콘텐츠 대비 일정 정도의 품질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더구나 이런 과정이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친숙함이 생겨야 특정 국가의 콘텐츠 소비가 일상화될 수 있다. 우리가 넷플릭스에서 북유럽의 콘텐츠를 제대로 소비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자국 시장에 외국 콘텐츠가 넘쳐날 때는 어김없이 자국 콘텐츠의 품질이 해외 시장 대비 열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해외 콘텐츠가 100% 지배하는 경우는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일본 콘텐츠가 개방되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일본 콘텐츠에 열광하던 한국이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매년 시즌 개편이 있을 때마다 일본 호텔에서 혹은 부산 호텔에서 자리를 잡고 일본 콘텐츠를 복사하기에 바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기에 일본 문화 시장이 한국에 진입하면 마치 큰 일이 벌어질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열자, 일본 시장의 영향은 미풍에 그쳤다. 한국 콘텐츠 품질이 알게 모르게 좋아진 탓이었다.
일부 마니아들은 여전히 일본 문화에 열광했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성장한 한국 콘텐츠를 더 선호했 다. 그러기에 2016~2017년 이후 현재까지 중국 영상 시장의 성장과 수준을 알아보는 것은 한국 콘텐츠의 수급 정도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한한령 중에도 여전히 한국 콘텐츠를 선호하고 소비하는 이들이 있다는 주장은 이 명제 앞에서 무력하다. 일본 문화 개방이 일어나기 전에도 일본 문화를 선호하고 소비하는 세력은 분명히 있었다. 대중 산업은 존재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규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단 몇 가지 정량적 지표를 비교해 보자. 2016년 전후 중국 드라마 연간 제작 편수는 대략 300여 편이었다. 19) 2023년에는 276편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이는 양적 감소와 질적 향상이라는 목적 하에 진행된 것이었다. 20) 실제로 8점 이상의 평점을 받은 작품의 수가 2021년에는 9편에 불과했지만 2023년에는 23편으로 늘어났다. 또한 드라마 제작의 주도권도 방송사 중심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2023년도 이후에는 웹드라마나 온라인 독점 콘텐츠의 비중이 70%까지 올라간 상황이다. 중국 드라마의 한국 유입 역시 2016년에는 전무하다시피 했으나, 최근에는 OTT 등을 통해서 방영되 거나, 리메이크되곤 했다. 무협물 이외에는 진입하지 못했던 한국 시장에 중국의 로맨스물 등도 유입되는 등 기술적, 정서적 수준이 레벨업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영화 시장으로 옮겨보면 더더욱 명확해진다. 팬데믹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의 중국 박스 오피스 규모는 2016년 457억 위안 수준을 넘어서 549억 위안(약 10조 원) 규모로 성장 21) 했다. 한국의 박스 오피스 규모가 2019년 최전성기일 때 2조 원 수준이었고, 2023년에는 1조 2천억 원 수준 22) 이었다. 그리고 2023년 미국의 박스 오피스 규모가 12조 원 수준 22)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체감할 수 있다. 더욱이 2016년 대비 2023년과 2024년의 중국 박스 오피스는 중국 영화가 완전히 장악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 한한령이 지속된 2017~2024년 동안 중국의 영상 산업은 규모와 품질 모두 크게 성장했다. 2017년 역대 최고 흥행작인 《전랑2》(Wolf Warrior2)의 경우에는 1억 5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23) 했고,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중국 박스 오피스는 약 643억 위안(약 13조 원)을 기록했다. 24) 특히 2020~2021년에는 팬데믹으로 할리우드 공백이 생기자, 중국이 세계 최대 극장 영화 시장으로 부상했다. 이 기간 중국 영화는 할리우드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나의 고향, 나의 부모》, 《장진호 전투》 등 대작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중국 영화 시장은 자국 중심의 시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자국 영화 점유율의 증가는 중국 영화의 품질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017년 50%대에 불과했던 자국 영화 점유율이 2024년 80% 전후 수준이 되었다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눈높이에 자국 영화가 부합하고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OTT와 숏폼 플랫폼 등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반적으로 중국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플랫폼 경쟁으로 인해서 콘텐츠 투자가 늘어난 탓이다. 늘어난 투자는 결국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한국 영상물의 성장이 결국은 수요 증가와 콘텐츠 투자의 결과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드라마를 생산하는 국가인 중국은 2015년 381편의 드라마를 해외에 수출해 처음으로 수입액을 넘어섰다. 이는 중국 드라마가 내수 시장을 넘어 아시아 및 글로벌 시장에서도 일정 지분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방영된 청나라 궁중극《연희공략》(Story of Yanxi Palace)은 아이치이에서 공개되자마자 수십억 뷰를 기록하며 중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제작비를 투입한 중국 드라마들은 영상미와 스케일 면에서 향상되었고, 일부 작품은 넷플릭스 등 해외 플랫폼에 수출되어 글로벌 시청자를 만났다. 예컨대 중국 드라마 수출액은 2015년 3.77억 위안 이후 지속 상승하여 2017년에는 6.33억 위안에 달했고, 동남아를 중심으로 중국 시대극과 로맨스물이 사랑을 받 고 있다. 영화 분야에서도 《유랑지구》, 《뮬란》 디즈니 실사 공동제작 등 블록버스터와 애니메이션 《나 찰》(Ne Zha)이 해외 박스 오피스 상위권에 오르는 등 중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졌다. 한한령 기간 중국은 거대한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콘텐츠 자급자족과 수출 모두에서 힘을 기른 셈이다.
물론 한국 콘텐츠 소비는 이어졌다. 한한령으로 한국 콘텐츠의 직접 진출이 막혀 있다곤 하지만, 음지의 시장은 항상 열렸다. 열성팬들은 우회 경로를 통해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VPN을 이용해 한국이나 글로벌 OTT에 접속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파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인기 한국 드라마를 찾아봤다.
그 결과 불법 시청이 폭증했는데, 2021년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경우 정식 서비스가 없었지만, 웨이보 해시태그 조회수가 20억 회에 육박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27) 한국 정부 당국자의 추산으로는 《오징어 게임》이 중국 내 60여 개 불법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었다고 28) 하며, 이러한 암시장 수요는 한한령 기간 내내 이어졌다. 실제로 중국 네티즌들도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를 몰래 보는 사람이 늘었다”고 평할 정도였다.
이를 방증하듯 2019년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나 2020년 JTBC 《부부의 세계》 등이 한국에서 방영될 당시 중국 SNS에서 뜨거운 화제를 낳았고, 등장인물의 패션이나 대사가 유행하기도 했다.
한한령 기간 표면적으로는 한류가 사라진 듯 보였지만, 물밑에서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위세는 2016년과는 사뭇 달랐다.
2022년 11월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한령 해제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됐다. 중국의 대형 OTT는 시장을 확인할 요량으로 한국 드라마 몇 편을 시험적으로 공개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스물다섯 스물하나》, 《힘쎈여자 도봉순》 등 인기 드라마가 아이치이를 통해 제공되고, 텐센트 비디오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변호텔》을 서비스하며 2016년 이후 첫 공식 한국 영화 콘텐츠로 소개했다.
이 중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첫 주 1,2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조회수는 대부분의 중국 히트작이 첫 주에 수억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태양의 후예》 등이 기록한 수치와 비교해도 작은 편에 속한다. 1,200만 조회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따라서 한한령 해제 효과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장르적 특성 때문에 조회수가 작은 것이라고 평가한다면 여전히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이고, 1,200만 이란 숫자가 한국 드라마의 현실을 보여주는 수준이라고 한다면 과거 대비 흥행 력이 낮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업계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후자에 가깝다.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지만, “그 열기가 뜨겁지는 않다”란 전망이 유효한 이유다.
한한령으로 몇 년간 공식 유통이 막히는 사이에 중국 현지 콘텐츠의 수준이 올라간 건 분명하다.
반면에 한국 콘텐츠도 과거 대비 더 많은 투자를 통해 콘텐츠 품질이 한 단계 레벨업된 것도 분명하 다.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등의 한국 콘텐츠는 넷플릭스를 타고 과거 대비 글로벌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넷플릭스에 수급된 콘텐츠에 한정된다.
냉정하게 한한령 기간 중국의 콘텐츠 자급률과 수준이 높아져서, 중국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적어도 한한령 이전의 위세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 두 개의 콘텐츠가 중국 시장에서도 각광을 받는 경우는 ‘분명’ 있겠지만, 전반적인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기대는 텐트폴 급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달리 이야기하면 중국 콘텐츠의 성장이 눈부시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기대를 할 수는 없으나, 엄선한 작품의 경우에는 여전히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넷플릭스 등에서 화제성을 가진 작품의 경우 중국 내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첫번째는 넷플릭스가 중국에는 공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넷플릭스와의 글로벌 판권 협상 시 중국 본토에 대한 예외 조항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다. 한한령 체제에서는 우리 역시 이 고민을 하지 않았고, 넷플릭스도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가능성을 타진해 봐야 한다. 두 번째는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넘기지 않고 중국 로컬 시장에 풀어낼 경우에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마지막에 하는 것으로 남겨두고 아시아 시장 내 수요로 넘어가 보자.
넷플릭스는 단순히 한국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 수요를 견인하는 수단으로도 한국 콘텐츠를 수급한다. 동일한 전략이 중국의 OTT 사업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중국 본토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OTT들이 진출해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의 가입자 확보 수단으로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현재 동남아 OTT 시장은 넷플릭스류의 사업자와 중국 사업자, 그리고 동남아시아 자국 서비스로 세분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중국에 직접 진출을 못 하는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의 무기로서 한국 콘텐츠가 기능하고 있는 반면, 중국 OTT들은 중국 콘텐츠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만약 한한령이 해제된다면 중국 사업자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중국 콘텐츠와 한국 콘텐츠를 묶어서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중국 OTT 시장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가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국 내 서비스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아이치이, 텐센트 비디오, 유쿠(Youku), 망고 TV등 주요 플랫폼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포화된 시장에서 성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들 중국 OTT는 이전부터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2019년 6월, 아이치이는 동남아시아와 북미 시장을 대상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출시했다. 초기에는 중국어 콘텐츠에 현지 언어 자막과 더빙을 제공해 접근성을 높였고, 점진적으로 현지 로컬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수급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텐센트 비디오는 글로벌 버전인 위티비 (WeTV)를 통해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현지 제작사와 협력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이런 노력으로 위티비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넷플릭스, 뷰Viu와 함께 주요 OTT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유쿠는 호주, 영국, 캐나다, 한국 등지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이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 베트남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망고 TV는 베트남을 핵심 거점으로 삼아 글로벌 버전 앱을 출시하고, 인기 콘텐츠의 해외 배급과 현지화된 콘텐츠 제작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주요 OTT 플랫폼들은 국내 시장의 포화와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자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주요 무기는 소위 C-드라마라고 불리는 중국 드라마다. 중국 영상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무협 일변도의 콘텐츠에서 판타지와 로맨스 등의 드라마가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기록하기에는 아직은 버거운 상황이다. 동남아시아 OTT 시장은 무료가 8~90%를 차지할 정도로 유료 기반이 약하다. 그러나 수익성을 고려한다면 유료 시장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유료시장은 넷플릭스가 50%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중국 OTT는 80% 가까운 무료 가입자를 유료 가입자를 전환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한령 이전에는 한국 콘텐츠를 수급해 재미를 보았지만, 한한령 이후에는 동남아시아 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한국 콘텐츠를 수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한국에는 이미 넷플릭스 등 새로운 수급 세력이 등장한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동남아시아를 핑계 대며 중국 정부의 방침을 어기면서까지 한국 콘텐츠를 수급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 OTT 사업자들은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현지 로컬 드라마, 예능을 제작 혹은 수급했고, 한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버전이나 한국 포맷을 활용한 현지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2013년 이후부터는 넷플릭스 역시 로컬 콘텐츠를 늘리면서 이 역시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한령이 해제된다면 중국 본토와 동남아 시장을 묶어서 한국 콘텐츠의 수급을 늘릴 수 있는 조건은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중국 OTT의 특성에 따라서 수급의 강도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 다. 아이치이와 위티비는 적극적으로 한국 콘텐츠를 수급할 것으로 보이지만 유쿠와 망고는 자국 콘텐츠의 활용도를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어느 경우에도 자국 콘텐츠가 우선이다. 다만 자국 콘텐츠의 품질이 문화 할인율을 적용한 타국 콘텐츠에 미치지 못한다면 타국 콘텐츠의 진입 가능성은 커진다. 한국 콘텐츠의 품질이 올라온 상황에서 해외 콘텐츠 일변도의 서비스가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것이나, 해외 콘텐츠로 무장한 넷플릭스가 결국은 한국 콘텐츠의 수급을 늘리면서 가입자 규모를 확보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보면 한한령 기간 중국 영상물은 장르의 다양성과 품질 면에서 전반적으로 문화적 할인을 적용한 해외 콘텐츠 대비 우수하다. 여전히 기호물로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 한한령 이전의 폭발적인 수요와 비교하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중국 OTT 사업자 입장에서는 넷플릭스 대비 경쟁 열위인 한국 콘텐츠의 수급력을 높이려는 동기는 충분하다.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를 결합할 경우 한국 콘텐츠의 수급 가능성은 높아지고, 반대급부로 비우Viu 등 글로컬 OTT 사업자 대비 우위를 기록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과거 대비 제한적이지만, 그들에게 ‘제한적’이란 규모가 우리에겐 커다란 의미로 와 닿을 수 있다.
한한령 해제는 우리에게 숨통이 트이는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편성 여부로 우리의 수익성이 결정되는 구조 자체의 변화는 없을지 몰라도 넷플릭스 아니어도 최소한 본전 게임은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낼 기회는 생긴 셈이다. 최고의 옵션은 넷플릭스에도 팔고 중국에도 판매하는 그림이겠지만, 이 가능성은 낮다. 앞서 살펴본 대로 중국 사업자는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를 묶어서 콘텐츠를 수급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숏폼 등의 콘텐츠가 아닌 이상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동남아시아를 제외한 글로벌 판권을 넷플릭스가 구매해 준다면, 중국과 동남아를 묶는 판권과 나머지 글로벌 판권으로 구분해서 총액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콘텐츠는 탈아시아 하지 못하고 있고, 넷플릭스에서 한국 콘텐츠를 수급하는 이유는 동남아시아 가입자 확보라는 명확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이 역시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제외할 경우 우리에게 주어진 유통 전략은 단순하다. 첫 번째는 방송, 국내 로컬 OTT, 그리고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의 조합이다. 로컬 방영 권한은 공유하되, 글로벌 방영권은 글로벌 OTT에 넘김으로써 최소한 제작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손익 구조를 만들어 내는 구조다.
물론 누가 IP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제작사의 수익성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송사에 IP를 넘겨줄 경우와 방송사가 방영권만 구매하는 경우 등 IP에 따른 변수가 있을 수 있고, 이 때문에 제작사의 수익성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그 어떤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글로벌 OTT 공급 계약을 체결할 경우 가장 바람직하고 희망하는 수익 규모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변함없다.
두 번째 경우는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방영권 구매를 거부한 경우다. 이 경우 방송사와 국내 로컬 OTT, 그리고 해외 로컬 OTT와 해외 무료 글로벌 OTT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해외 무료 글로벌 OTT 에는 라쿠텐 비키(Rakuten Viki)가 여기에 해당하고, 해외 로컬 OTT로는 일본의 유넥스트(UNext), 인도 네시아의 비디오(Vidio)나 동남아시아 지역 대표 OTT인 비우 정도가 있다. 이 조합의 경우 국내 방송 사와 국내 로컬 OTT가 전형적으로 콘텐츠 수급을 결정해 주지 않는다면 대부분 제작비의 50~60% 를 회수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이 대목에서 한한령이 해제될 경우 우리에겐 제3의 옵션이 생긴다. 글로컬 대신 중국 본토와 동남아 시아를 묶을 수 있는데 중국 본토의 크기 때문에 비우 등 로컬 OTT의 수급 금액을 넘어설 수 있다.
방송사 등의 흥행 성적이 뒷받침해 준다면 예외적으로 《태양의 후예》처럼 전체 제작비의 40% 수준까지 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보통은 대략 20~30% 수준에서 평균 수급 단가가 만들어질 가능 성이 높다. 중국 OTT 역시 편당 가격으로 수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현재 수준에서 10~20%의 증분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 손익 면에서 글로벌 OTT에 콘텐츠를 판매하지 못해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대신 추가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옵션과 넷플릭스에 공급하지 않는 대신에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옵션 외에도 손익을 맞추면서도 추가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생긴다는 점은 우리의 협상력이 조금 더 개선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전체적인 방송 생태계의 변화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태양의 후예》는 제작 사가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IP를 확보하고 방송사에 방영권을 판매한 경우다.
한한령으로 인해 손익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제작사는 굳이 방송사에 IP를 넘기는 형태의 거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점에서 방송사가 아니라 제작사의 위상이 다시 한번 올라갈 여지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과거처럼 방송사의 시청률에 따라 판매 가격이 결정된다면 방송사의 위상이 다시 상승할 수도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 제작비가 상승한 상황에서 방송사가 손쉽게 베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조심스럽게 제작사 중심의 시장이 재현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싶다. 이 지점은 향후 한한령 해제 이후에 거래 관계를 보면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힘들어하는 한국 영상 시장이 생존을 위한 숨통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한한령 해제는 작은 의미는 아니다. 이 구조를 잘 활용할 경우 전반적으로 넷플릭스의 수급 단가를 높이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덤으로 다시 열린 중국 시장은 출연자들의 광고 수익 등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출연자의 넷플릭스 쏠림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아주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넷플릭스 출연이 가져오는 금전적 효과는 아시아 시장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출연료는 물론 콘텐츠의 정당한 대가 지불 구조가 마련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