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며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실용 정책을 기반으로 국가 경제와 산업 진흥을 예고한 만큼 향후 정책 방향에 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새 정부의 대선 10대 공약에는 미디어 분야가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아, 관련 산업에서는 정책적 소외에 대한 위기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1호 공약인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에 ‘K-컬처 글로벌 브랜드화를 통한 K-이니셔티브 실현 및 문화수출 50조 원 달성’, ‘K-콘텐츠 창작 전 과정에 대한 국가 지원 강화 및 OTT 등 K-컬처 플랫폼 육성’, ‘문화예술인의 촘촘한 복지 환경 구축 및 창작권 보장’ 등 콘텐츠 산업 내용은 명시됐지만 미디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OTT 플랫폼이 미디어 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유일한 내용이었다.
미디어 산업이 이번에도 외면당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K-콘텐츠 경쟁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담아낼 미디어 플랫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미디어 거버넌스는 크게 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부처로 나뉘어 있다. 좁게 보더라도 과기정통부, 문체부, 방통위 3개 부처에 걸쳐 있다. 그렇기에 부처 간 바라보는 업무 중요도나 관할 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제 정도나 진흥 정책에 대한 견해차가 크고 결정이 늦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국내 미디어 사업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영상물 등급을 제외한 별다른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이미 역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합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OTT뿐 아니라 방송영상콘텐츠 사업자 모두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KCA 미디어 이슈&트렌드 기획위원 11인은 2024년 미디어 산업을 결산하며 2025년 미디어 산업 키워드로 다음 내용에 주목했다. 5명이 ‘위기의 심화’를 꼽았으며 4명이 ‘인공지능(AI)’, 3명이 ‘미디어 AI 변이점’을 제시했다. 모두 변화와 생존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한국 미디어 산업의 위기는 유료방송 가입자 수에서도 나타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유료방송 가입자는 3,636만 4,646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약 2만 명 감소했다. 3반기 연속 감소다. 국내외 미디어 산업 경쟁이 가속화되고, 월평균 가입자당평균매출(ARPU) 정체, 방송광고 감소 등 유입 재원이 감소하며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그동안 IPTV 가입자 수 상승세가 종합유선방송(SO)과 위성방송 가입자 감소를 상쇄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진 것이다.
케이블TV 기술중립성 가입자는 늘어났다는 점에서 해답을 고민해야 한다. SK브로드밴드가 기술중립 서비스를 시작한 2023년 5월 이후 전체 가입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25만 8,04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6월 10만 1,892명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기술 발달 상황을 고려해 유료방송 사업자 간 전송방식 구분을 없앤 기술중립 서비스의 사례처럼 미디어 산업 규제와 제도의 현실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새 정부 출범에 앞서 미디어 전문가들은 국내 방송산업 대응 전략, AI 등 기술 변화와 생태계 혁신,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정책 방안 등을 다음과 같이 논의했다.


2. 좌담회 참석자(가나다순)
ㆍ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책임연구위원
ㆍ김경태 MBC공영미디어연구소 소장
ㆍ박종진 전자신문 기자(사회 겸)
ㆍ조영신 미디어산업평론가, Ph.D.
ㆍ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
3. 좌담회 개최 취지
세계 미디어 산업은 AI 기술 확산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 속에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좌담회는 이러한 세계적 변화와 추세가 방송·미디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인공지능(AI) 활용, OTT 경쟁력 강화, 플랫폼 정책 재정비 방안 등을 살펴 국내 산업 현주소를 점검하며 나아갈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에는 공영방송, 글로벌 시장, 방송광고, OTT·FAST 플랫폼 등 다양한 미디어 산업 분야 전문가들과 AI·미디어 분야 정책·산업 다년 취재 경력의 기자 등 5인이 참여했다.
4. 좌담회
4-1. 글로벌 변화와 국내 방송산업의 대응 전략
Q. 현재 글로벌 미디어 산업 변화 중 국내 방송미디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예를 들어 AI 기술 발달, OTT 확장, 콘텐츠 수출 환경 조성, 플랫폼 정책 변화 등 측면에서요.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책임연구위원(이하 강신규) : 국내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확장 추진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시장지배력 확산 이슈가 공존하는 상황입니다. 낡은 규제 혁파와 공정경쟁 환경 조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소 규제 원칙을 수립하고 수평적 규제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내외 사업자 간 규제 형평성 확보 차원인데요. 기존 지상파 방송 중심의 수직적인 콘텐츠 제작·유통 패러다임이 OTT 출현으로 수평적 체계로 전환됐기 때문입니다. OTT 추천 알고리즘, 데이터 전략, 광고 커머스 등을 바탕으로 넷플릭스가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데요. 대부분 플랫폼 사업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또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콘텐츠 유통을 막기 위한 기술·제도적 대응을 강화하고, 국제 공조 통해 해외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등에 대한 단속도 강화해야 합니다. 산·학·연·관 그리고 국내외 파트너십과 협업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의 경쟁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사업자 간의 콘텐츠 공동 제작·투자, 플랫폼 연동, 나아가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제휴를 장려하고 관련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조영신 미디어산업평론가, Ph.D.(이하 조영신) : 글로벌 미디어 산업과 한국은 디커플링 중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미디어 시장 변화가 직접적으로 한국 미디어 시장에 미치는 임팩트는 거의 없어 보이는데요. 우리는 지엽적인 변화에 민감하고 거시적인 변화에 둔감한 측면이 있습니다. AI가 미디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넷플릭스의 알고리즘과 추천 등은 생성형 AI가 등장했다고 더 고도화되는 것이 아니고 예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 추천도 사람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시장에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넷플릭스가 AI를 활용해서 추천 목록을 실제 고도화했다고 할 수 있는지는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방송사가 생성형 AI로 만든 프로그램이 거의 없거나 일부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AI가 미디어 시장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레거시 사업자들은 범용 서비스를 벗어나 프라이빗 AI로 진화하고 있는 게 미국의 영상산업인데요. 한국은 여전히 범용 서비스의 활용 논의만 하고 있으면서 마치 AI가 시장을 바꾸고 있다고 답합니다. 그것보다 넷플릭스 1사 체제가 공고화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정도, 그리고 유료방송 가입자는 그대로지만 실질적으로는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 유료방송사의 ‘유사 코드커팅’으로 인한 시장 왜곡이 더 크다고 보입니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이하 한정훈) : 경계가 없어진 것이 큰 특징입니다. 구독 미디어와 넷플릭스·유튜브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구독자를 잡는 방식으로 가면서 넷플릭스와 크리에이터, 유튜브가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슈퍼 팬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수평적 경제 모델과 비교할 수 있고 경계가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국내 방송사는 콘텐츠 유통 및 기술적인 경험이 많이 없습니다. 수직계열화 때문인데요. 스튜디오와 스테이션 체제의 경험이 크지 않은 거죠. 반면 미국은 40년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미디어는 경계 없는 싸움에서 고전하고 있고 광고 등 단순한 수익구조 역시 글로벌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김경태 MBC공영미디어연구소 소장(이하 김경태) : 지상파 방송은 콘텐츠나 산업을 이끌어가는 역할에서 오히려 케어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가장 큰 것은 OTT의 확장입니다. 유통 종속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기존에는 국내 유통만 이뤄지다가 OTT, 플랫폼 등 대한민국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규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치외법권의 글로벌 업체한테 종속돼 가는 상황입니다. 미국 의회에 한국 기업을 챙겨달라고 할 수 없으니 아주 막막한 상황입니다. 해외 OTT의 국내 확장도 변수죠. OTT가 양날의 칼이 됐어요. 지상파 방송은 OTT와 싸워야 하지만 OTT에 콘텐츠 판매도 해야 합니다. 국내 관점으로 보면 적이나 해외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동반자입니다. 그래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플레이어마저도 사례별로 일대일 대응을 하다 보니 통합된 움직임도 못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죠. 영화 제작자, 드라마 제작자들이 한목소리 내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 미디어 업황을 보면 국내 사업자들이 뭉칠 수 있지만 해외 시장의 이윤 앞에서는 뭉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업계 내 통일된 의견과 컨센서스를 마련하는 게 가장 어려워 보입니다.
박종진 전자신문 기자(이하 박종진) : OTT 산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OTT 시장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이 변화가 지상파 방송과 방송편성채널사업자(PP)에게도 영향을 미칠테니까요. 우선 티빙과 웨이브 합병 논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올해 합병이 이뤄질지, 비회원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쿠팡플레이를 제치고 국내 시장에서 확실한 2위 사업자가 될 수 있을지, 1위 넷플릭스와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네이버와 넷플릭스가 ‘네넷’ 동맹을 맺은 상황에서 티빙과는 절연했는데요. 네넷 동맹으로 넷플릭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견고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티빙도 애플TV플러스와 브랜드관 제휴로 맞불을 놨는데요. 이러한 제휴 전략 속에 승자는 누구일지, 올해 연말에는 국내에 몇 개의 OTT만 서비스를 제공할지 관심이 갑니다. 방송사의 위기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결국 불필요한 규제 완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봅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사업자와 역차별이 될 수 있는 제도와 규제를 과감하게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인데요. 파편화된 미디어 거버넌스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고 ‘최소 규제 최대 진흥’을 이끌 주도적인 독임부처가 탄생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Q. 글로벌 OTT 플랫폼과의 경쟁 속에서, 국내 방송사와 OTT는 어떤 콘텐츠 전략 또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영신: 전략 수립과 적용이 가능한지 의문이 있습니다. 일방적인 구조이기 때문인데요. 협업 구조 등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은데 협업은 동등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방적일 때는 선택을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어떻게 하면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가 전략이라고 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정한 루틴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인데요. 오늘 선택했지만, 내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일방적 관계의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반응을 예민하게 보면서 끊임없이 대응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넷플릭스 단일 체제가 되지 않도록 경쟁력 있는 로컬 OTT 등이 등장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경태: 대응이나 전략은 막막하다고 봅니다. 공통적으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존에 웨이브·티빙 등 OTT뿐 아니라 라인 등 온라인 플랫폼과 협업할 수 있는 제도나 계기를 많이 만들면 좋겠습니다. 웹툰·음악·드라마 등 방송영상콘텐츠를 묶어서 갈 수 있는 미디어 플랫폼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정훈: 국내 방송사는 스트리밍 대응 자체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자체 구축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까지 나온 다음에 콘텐츠 전쟁 속에 K-콘텐츠를 확보해서 글로벌 파트너십을 가져가려고 했던 상황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파트너보단 하청 기지화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수익이 집중되는 게 넷플릭스입니다. 넷플릭스 집중화에 다른 플랫폼의 미약함이 겹치면서 방송사들의 넷플릭스 종속이 심화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지식재산(IP) 확보가 힘든 것이고요. 그런 상황에서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으니까 예능 위주 제작으로 돌아섰습니다. IP 가치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거죠. 정부가 재원 등으로 IP를 밸류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OTT 사업자는 한국 시장만으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통합을 해도 이기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수익성(ROI)을 높이는 상황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보입니다. 스포츠 중계권같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장르를 구분해서 투자해야 합니다. 글로벌 시장 자체 진출은 답이 없어 보입니다. 마케팅 싸움인데 쉽지 않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은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넷플릭스 의존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북미에 진출한 ‘코코와(KOCOWA)’ 사업 형태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PIP 채널이나 글로벌 플랫폼 내 입점 방식과 같이 ‘숍 인 숍(Shop-in-Shop)’ 방식으로 진출하는 게 마케팅비를 줄이면서 입지를 늘리는 방향입니다.

강신규: 방송사와 OTT가 멀티 플랫폼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방송사 중심으로 이러한 행태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상파 방송이 웨이브 등 자체 플랫폼에 독점 공급하는 형태에서 넷플릭스 등 다른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작비가 많이 늘어나고 광고는 줄어드는 상황에 경쟁 OTT 플랫폼에도 콘텐츠를 공급하며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이죠. SBS가 대표적입니다. 수치적으로만 봐도 많은 방송프로그램이 복수의 OTT에서 제공되고 있고요. 다각적인 협력 생태계 구축이 필요한데 너무 저렴한 가격에 IP를 넘기는 방식으로 가는 건 안 된다고 봅니다. 합리적인 방향을 고민해야 하고요.
또 문화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국가나 지역 문화나 정서에 반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한데요. 몇몇 국가에서 이슈가 있었죠. 지역 특성이나 문화를 고려하고 반영한 콘텐츠가 생산돼야 합니다. 단, 다양성을 위해 맥락 없이 콘텐츠를 구성하는 건 지양해야 하고요. 글로벌 협업 차원에서 공동제작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요. 리스크는 나누고 글로벌 진출은 쉽게 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국내 기업 간 전략적 협업이나 동아시아 기업 간 공동 제작이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규모의 경제, 시장 조성을 위해 동아시아 기업과 공동 제작을 제안합니다.

Q. 해외 국가의 미디어 정책 변화 중 눈여겨보는 사례가 있으신가요? 우리가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는지, 있다면 국내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요?
한정훈: 조기 대선이 이뤄졌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인 미국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 기존 규제 10개를 제거하도록 지시했고 사업자별 의견을 정부 차원에서 수렴했습니다. 기업들은 레거시 미디어나 승인 사업자 중에 보편적 시청권을 위해 도입된 제도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 때문에 철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요. 미국방송협회(NAB)는 공익성 확보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냈는데요. 대표적으로 의무재전송 동의와 의무편성을 지적했습니다. 재전송을 하면 매출이 생기고 편성은 그렇지 않거든요. 광고만으로는 수익 확보가 안 되니까 재전송을 받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습니다. 스트리밍 시장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케이블 등 사업자를 가둬놓고 퍼블릭 서비스가 무얼 하겠냐는 지적이 나온 거죠. 다양한 플랫폼에 커버리지를 넓히는 방식으로 공급도 이뤄질 것 같고 미국 미디어 정책이 바뀌고 있습니다. 미국도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가 있는데 모두가 넷플릭스를 보는 상황에서는 프로그램 다양성 확보가 늘어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글로벌 OTT 기업이 190개 이상 국가에 진출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국가별 쿼터제는 철폐되는 분위기고요. 해외 OTT를 어떻게 규제할지 논의 중입니다. 현지 매출을 해외 본사로 돌리는 행태 때문인데 제작비를 현지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등이 고려되고 있어요.
강신규: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북유럽의 ‘노르딕 국가 공동 제작 연합(Nordvision)’입니다. 예산과 인력을 공동 투자해 《더 브릿지(The Bridge)》, 《보더타운(Bordertown)》과 같은 드라마를 제작했고요. 협력의 결실로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 인지도를 얻었습니다. 이 모델은 문화 보존과 양질의 콘텐츠 제공, 공영방송의 주도적인 역할이 특징이고 국제적으로 판매하면서 수익을 내는 전략적 균형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영국에서는 지난해 미디어법을 개정했는데요. 공영방송 관련 부분인데 지속 가능성 확보, 주문형비디오(VOD) 규제, 스마트TV에서 공영방송 콘텐츠 노출 보장 등이 골자입니다. 넷플릭스를 규제 범위에 포함해 장애인 접근성을 향상하고 공영방송 콘텐츠가 스마트TV나 OTT에서 더 잘 보일 수 있게 현저성을 확보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국내 공영방송도 디지털 환경 변화에 맞춰 온라인 플랫폼에서 역할을 강화하고 현저성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경태: 일본 NHK가 휴대폰을 수신료 부과 대상으로 포함했는데요. 수신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PC 등 디바이스를 보유하거나 NHK 인터넷 방송 서비스 ‘NHK플러스’를 이용하는 사람 대상입니다. 수신료 개념이 확대되는 것으로 보이고요. TV에 수신료를 부과하는 것에서 나아가 핸드폰도 부과 대상으로 포함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조영신: OTT와 관련한 해외 국가 사례 중 참고할 만한 사례는 사실상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각국이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중입니다. 일부 국가에서 넷플릭스에게 매출액 대비 콘텐츠 투자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넷플릭스가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방송시장 규제 개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해외 시장을 본다고 해도 국내 시장에 적용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4-2. AI 등 기술 변화와 생태계 혁신
Q. AI 기술이 방송산업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요? 콘텐츠 제작은 물론, 편성, 유통, 마케팅 등 방송산업에 미칠 영향이나 변화에 대해 전망 부탁드립니다.
김경태: 콘텐츠 AI 검색을 했을 때 AI에 채택되는 배경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AI 검색인가 하는 생각은 있고, AI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하지 않겠느냐는 저널리즘 측면에서 우려는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프로덕션 측면에서는 AI가 제작비 절감 쪽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데 기존에 몇천만 원이 투입됐다면, AI로 하면 몇백만 원 선에서 30~50분 만에 제작도 가능하니까요. 현장(로케이션) 촬영을 최소화할 수 있고 다양한 효과도 줄 수 있고 제작 쪽에서는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구글(Google) I/O 2025에서 구글은 구글 미트(Google Meet)에 실시간 음성 통역 기능을 추가했다고 발표했는데, 향후 방송영상 더빙도 실시간으로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해외 시장 판도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종진: 방송·미디어 산업에서도 AI 활용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제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방송영상콘텐츠를 제작하기 전 시나리오를 만들고 세트나 콘티를 구성하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활용은 물론, 컴퓨터그래픽(CG) 등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도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는 방향으로 AI가 활용되고 있습니다. 챗GPT나 제미나이와 같이 언어나 대화 위주 생성형 AI 서비스에서 나아가 ‘소라(SORA)’나 ‘달리(DALL·E)’와 같이 시각언어 모델로 영상 제작이 가능한 AI 서비스도 출시되고 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는 오직 AI로만 만든 베타 영상을 공개했고 국내 스튜디오 기업들도 AI 활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광고 시장에서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기술로 디지털 휴먼을 개발하는 것에서 나아가 AI를 활용해 발화를 자연스럽게 하고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미 가능한 일입니다. 방송프로그램에서는 고인이 된 가수·배우나 사연이 있는 일반인의 목소리를 재현하고 움직임, 동작, 발화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구현하는 시도도 이미 이뤄졌죠.

한정훈: AI가 방송에 더디게 도입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작년부터 본격화하고 있는데요.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이 ‘프리-프로덕션–포스트’ 단계로 진행된다고 나눌 때 프로덕션 상에서 활용되는 것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장소 컨택, 기획, 콘셉트, 편성 등에 활용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챗GPT에 편성표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AI가 만드는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아마존의 NHL 사례인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하이라이트를 10개 이상 만들고 있어요. 유튜브에 올리면서 광고 경쟁이 되는 거죠. 광고 에셋을 AI가 만들어주기도 하고 비용은 줄이고 수익을 넓히는 방식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인력 감축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요. 기술로 사람을 줄이진 않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창의성에 대한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고 보입니다. AI가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진 못할 것입니다. 역할은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송국 작가들이 스크립트를 쓰지 않고 AI에 맡기는 대신 출연자를 섭외하고 일정 정리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미국 스튜디오에서도 무인 카메라를 활용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AI가 비용 구조 등에서 효율성을 가져올 것은 분명합니다. 후반작업인 포스트 영역에도 많이 쓰일 겁니다. 숏드라마의 새로운 포맷을 만드는 데도 AI 활용이 이뤄질 겁니다.
강신규: 광고 분야에는 AI가 빨리 들어오긴 했습니다. 타깃화, 개인화 등에 활용되는 거죠. 광고 영상이 짧고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실험장으로서 역할 하기가 적합했어요. AI 기업들이 AI로 광고영상을 만드는 걸로 홍보도 많이 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디지털 광고 측면입니다. 방송광고까지는 AI가 많이 들어오진 않았어요. 방송광고 쪽에서는 AI가 PPL에 도입되는 추세인데요. AI 기술로 제품을 방송영상에 합성해주는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가상 간접광고가 창작의 영역이라서 최근 방송프로그램은 아니고 구작이나 OTT, FAST 플랫폼 등을 통해 해외 진출할 때 광고 활용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튜브는 제작과 편집, 광고까지 AI로 할 수 있게 열어주고 있어요. 생성형 AI가 만든 광고들에 관한 관심이 뜨거운데 ‘소라(SORA)’나 ‘달리(DALL·E)’를 활용해서 만든 광고도 많습니다. 지금은 어색하더라도 AI 기술을 많이 활용하는 이유는 광고주나 매체가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영신: 편성, 유통, 마케팅 등 필요한 솔루션에 AI가 다 탑재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로 시장에서 큰 변화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고 봅니다. 효율성이 좋아지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정작 유의해서 봐야 할 것은 조직으로서 방송사가 관심을 가져야 할 AI, 조직원으로서 PD 등이 관심을 가져야 할 AI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 PD가 범용 AI 서비스를 활용해서 기획서를 작성했다고 치면 이때 이들 개인 PD가 만든 기획서를 회사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 차원의 AI와 개인 차원의 AI 사용을 구별하는 게 우선입니다.

Q. 방송 제작 과정에 AI가 빠른 속도로 접목되고 있는데요. 방송사의 AI 혁신을 위해 추진해야 할 방송사 측면, 정부 지원 측면에서 과제는 무엇입니까?
강신규: AI를 방송에 활용할 경우 사람의 목소리 관련 정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노동과 창작 영역에서 비효율이나 인권 침해, 실직 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합니다. 정책을 만들 때 기업 등 업계 대표자뿐만 아니라 창작자나 노동자와 대화가 필요하고요. 창·제작자의 저작권, 제작 환경 보호 등 부분에 대해 폭넓게 고려해야 합니다. 기술을 창작에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버린 AI’ 얘기가 나오는데 한국 기술 기반의 AI를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소외된 지역, 약자, 로컬 데이터 보호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한정훈: AI 시대 IP 보호가 중요합니다. AI로 IP를 보호할 수 없는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 방송되거나 공개되지 않았는데 트레일러가 많이 나오는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오징어게임 시즌3》 트레일러가 대표적이죠. 이렇듯 기존 IP를 악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켜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송은 신뢰성이 중요한데 AI 제작 여부를 표시하도록 해 신뢰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방송사들은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을 때 무시하거나 제때 대응하지 못해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송사 프리미엄 콘텐츠 생태계에도 AI가 활용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AI 기술 등을 활용해 큰 대작을 제작하는 것을 지원해 대표 사례를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박종진: 충분한 데이터 확보와 저작권 문제 해결, AI가 제작한 방송영상콘텐츠의 유통 방법과 표시 등 제도 확립이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AI 학습 데이터 확보를 위해서 지역방송사가 갖고 있는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고요. 한국영상자료원 등 공공부문에서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열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양질의 학습 데이터가 있어야 AI 기술이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현재 단계에서 방송영상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개입 없이 제작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엉성하게나마 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인데요. 실제 광고 시장에서 프롬프트(명령어)만으로 15초 분량의 광고를 AI가 제작하거나 미국에서 베타 영상을 만들 정도가 되니까요. 결국에는 얼마나 정교하게, 저작권 문제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시청자 등 소비자가 AI가 만든 콘텐츠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표시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까지 제도 마련이 선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조영신: 저작권 문제와 프라이빗 AI 활용을 고민해야 합니다. 방송사가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 프로그램 제작에 AI를 적극적으로 쓰지 못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상업용 방송사는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태: AI 활용이 영상·이미지로 넘어가고 있는데요. 지역방송사가 보유하는 아카이브 이슈가 있습니다. 아카이브 화면을 어떤 형태든 활용할 수 있게 학습하든 디지털화하든 할 수 있음에도 역량 등의 이유로 AI 시대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역방송사 자체적으로는 인력, 비용 등 문제로 할 수가 없는데 이런 것들을 국가 차원에서 공적으로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공공 라이브러리 형태로 공개하고 일정 수수료를 받아서 학습용 데이터로 준다든지 하는 게 해법입니다. 지역방송사들을 지원하고 아카이빙된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거죠. 영상 AI 학습 데이터로 충분한 소스가 될 수 있고 지역 입장에서도 관광·축제 등이 있을 때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독립제작자나 유튜버 등도 활용할 수 있어 투자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4-3.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정책 제언
Q.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인력, 기술, 제도, 협업 등 우선 추진해야 할 전략은 무엇일까요?
강신규: 제도적으로 수평 규제 얘기를 하지만 최소 규제 원칙 수립과 실현이 중요합니다. 각 정당의 정책을 보면 예전 것을 모아서 그대로 가져온 것들이 많은데요. 항상 실현 단계에서 막히는 게 문제입니다. 수평 규제 체계로 전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콘텐츠 불법 유통을 근절할 수 있는 체계도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금 정부 차원 해외 공조 등을 통해 그때그때 해결하고 있지만 기술과 제도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국제적인 공조도 강화해야 합니다.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책임연구위원

한정훈: 상업적인 영역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광고나 PPL 등 형식 규제, 자로 잰 듯한 규제인데 공공성만 강조한 거죠. 시장에서 공정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콘텐츠 품질 등 규제는 중요한데 상업 관련 규제는 풀어야 합니다. 분유와 같은 품목 규제는 풀어야 하는 거죠. 넷플릭스가 스포츠 콘텐츠로 실시간 방송 영역에 진출했을 때 국내 방송사가 유지해 왔던 지역성, 공공성, 공익성, 저널리즘 등의 의무를 부가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할 수 없다면 규제 완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스포츠 취재는 크리에이터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역 뉴스와 스포츠 등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대신하면서 지역 신문까지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방송사가 사라지고 스포츠 크리에이터들이 인터뷰까지 하는 상황인데요. 지역 언론이 사라지다보니 선거 국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미디어가 생존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게 아닐지 검토해야 합니다.
김경태: 방송미디어산업이 글로벌 경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글로벌 유통 체계에 종속화된 국내 방송이 살아남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건데요. 특히 광고 산업 측면에서 보면 IP를 파는 시장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입니다. 지상파 방송 평균 시청률이 4% 정도인데 시청률 표본으로 사용하는 닐슨의 데이터와 격차가 큽니다. 표본 시청률이 없어서 타깃팅도 안되고 마케팅도 안 되는 문제가 있죠. IPTV나 통신사 데이터로 지표 정확성을 높여야 합니다. 라디오 청취율 조사도 문제가 많죠. 1년에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개수는 2만 5,000개~3만 5,000개 정도인데 청취율은 실제 청취 경험보다는 선호도나 인지도 중심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이미 정착된 유통구조를 바꿀 방법은 없고 시청률, 청취율 등 지표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혁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미디어등급위원회(MRC)가 있는데요. 검증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지표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책임연구위원

조영신: 로컬 OTT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퀄리티와 넷플릭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최소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Q. 방송사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방송콘텐츠 제작 측면에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김경태: 방송사의 공공성, 공익성 부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뉴스 시사 프로그램입니다. 인허가 대상이 보도, 시사 분야입니다. 예능이나 상업적 프로그램에 대해 공공성을 얘기하는 게 상호모순적인데요. 저널리즘이라는 인더스트리 자체는 ‘보조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보조를 받지 못하면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입니다. 드라마 PD나 예능 PD가 기자를 보조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어요.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를 예로 들면 제작비가 600억 원 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방송사에서도 그런 대작을 만들고 드라마를 완판시키면 회당 15억 원을 벌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상파 방송사가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부족한 제작비를 누군가로부터 받아와야 하는데요. 그러면 시청자가 보지 않아도 될 PPL을 보게 되는 것이죠. 제작비가 커지는 것은 추세라서 이러한 상황이 싫으면 웰메이드 드라마를 안 만들겠다는 논리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예산에 0이 하나 더 붙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제작비가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수익구조가 엉망이 돼 있는 상황에서 제작비만 국제화되는 것이죠. 드라마만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마케팅으로 돈을 벌 수밖에 없는데요. 드라마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구조는 이미 끝난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예능이 수익원으로 남아있었는데 넷플릭스가 편성을 늘리고 있습니다. 드라마, 예능을 통한 수익구조가 무너지면서 저널리즘을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재원이 사라지고 있어요. 현재 구조가 지속되면 지역방송부터 시작해 지상파 방송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건 나라에서 모두 지원할 수 없다는 거예요. 모든 방송사와 언론사를 국영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방송사 수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 등 지원 방안 마련이 필요합니다. 수익이 있어야 공공성도 확보되는 거니까요. 미디어 바우처 같은 ‘당근책’보다는 자립·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예산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조영신: 지금은 방송사의 공공성 확보 논의를 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방송시장 전체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공성 논의는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습니다. 한국 방송시장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드는 게 먼저입니다. 공공성 등의 논의는 이후에 논의해도 됩니다. 공공성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국가 정책이 그런 문제에 신경 쓸 정도로 방송산업 생태계 내 여유가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한정훈: 공정하게 싸울 수 있는 룰을 만들어줘야 하고 공공 지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공공 플랫폼을 지원하고 있는데 ‘티버(Tver)’와 같은 사례를 고민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상당수 지분을 갖고 있는 OTT 웨이브의 FAST 플랫폼화라고 보면 되는데요. 기존에는 도쿄 지역에서 뉴스를 중심으로 유통하다가 커버리지가 넓어지고 구독자가 확대되니까 노래자랑 같은 저비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에서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디즈니플러스 점유율이 큰 나라인데요. 공공 콘텐츠를 보는 시청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시청자와 구독자가 발견(discover)할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하게 나오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방송영상콘텐츠를 플랫폼별로 분절해서 소비하는 추세인데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공공성 있는 콘텐츠가 잘 발견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검토해야 합니다.
강신규: 장르 편향성이 심화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에 유튜브나 OTT가 유행하면서 예능 등 특정 장르로 제작과 소비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요. 넷플릭스향 콘텐츠로 집중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콘텐츠 다양성 측면에서는 옳지 않은데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서 다큐멘터리나 교양 중심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있는데 영국 공영방송 BBC 같은 경우 공상과학(SF), 단편,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 성격의 소프 오페라까지 제작 지원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위한 제도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Q. 방송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해 새 정부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종진: 지상파 방송과 유료 방송, OTT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등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합니다. 특히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가 시장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전체 유료 방송 산업의 위기라고 볼 수는 없지만,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위기에 직면한 것 같습니다. 유료 방송 가입자 증가세도 IPTV가 견인한 것이고 IPTV 가입자 증가세보다 케이블TV·위성방송 감소세가 큰 게 현실화됐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FAST 플랫폼 등장, 20~30대 젊은 인구의 유료 방송 미가입, 인구 감소, 늘어나던 1인 가구 포화 또는 복합적 이유 등이 지목되고 있죠. 그럼에도 각종 규제로 성장을 위한 터닝포인트가 마땅치 않다는 게 업계 전반의 인식입니다. 유료 방송 플랫폼 구분이 무의미해진 만큼 최소한의 규제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자강을 위한 정책 지원방안도 고민해야 합니다.

강신규: 재정 지원 체제 개편이 필요합니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고요. 올해만 15% 줄었습니다. 당분간 업계가 계속 힘든 상황일텐데 이러한 감소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기금 규모와 구조에서는 기금 자체만으로 신규 사업을 만드는 게 어렵습니다. 목적 외 사용 얘기는 계속되고 징수 구조 얘기도 계속됩니다. 재정 지원 등 예산 비일관성에 대한 비판도 나오는데요. 기금 기반 공적 지원 체계는 한계가 있습니다. 방발기금 징수 체계 개편은 당연히 필요하고 미디어 진흥 목적으로 활용할 재원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방발기금만으로는 미디어 지원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부광고 수수료의 일정 비율을 미디어 진흥 목적으로 사용하는 방식 등을 고민하고 재정 지원을 위한 전담 조직 마련을 검토해야 합니다.

한정훈: 방송산업은 기본적으로 인허가 규제가 큽니다. 과거에는 진입하면 좋은 시장이었죠. 글로벌 경쟁이 이뤄지는 등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현재 방송 관련 진입규제, 사전규제가 많은데 시장규제 형태로 바꿔야 합니다. 시장에서 불확실하거나 불합치가 있으면 수평 규제로 바꿔야 합니다. 거버넌스 역시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미디어, 언론사, 콘텐츠냐 중심으로 따질 게 아니라 구독자와 시청자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시청자에 따라 콘텐츠도 유통돼야 합니다. 사업 효율화, 해외 유통 플랫폼, 스테이션이나 스튜디오 경쟁력 등 전반을 고려해 미디어 플랫폼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장르 불문 K-컬처 플랫폼 등 플랫폼과 콘텐츠 경쟁 관계도 가져가야 합니다. 지금의 K-콘텐츠 생태계 유지하려면 플랫폼 지원이 강화돼야 하고 거기에 맞춰 거버넌스도 바뀌어야 합니다.